이 시리즈를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반쯤은 애호가다
필름카메라부터 아날로그 시계, 캠코더까지 일곱 편을 넘게 따라 읽었다면, 이제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이 물건들에 어느 정도 마음을 뺏긴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레트로 기기를 실제로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순간들을 9가지로 모아봤다. 몇 개나 공감이 되는지 세어보면서 읽어도 좋겠다.
하나, 택배 상자를 열기 전 3초의 정적
중고로 산 카메라나 시계가 도착하면, 상자를 뜯기 전에 잠깐 숨을 고르게 된다. 설명대로 잘 작동할지, 사진 속 흠집이 실제로는 더 심하지 않을지 하는 불안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오는 그 3초는, 새 제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할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둘, 필름 한 롤 다 쓰고 현상소 가기 전까지의 초조함
디지털카메라라면 그 자리에서 확인하면 그만인데, 필름은 그럴 수가 없다. 마지막 컷을 찍고 필름을 감아 꺼낸 순간부터 현상된 사진을 받아보는 그 며칠간의 기다림은, 매번 겪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다. 오히려 몇 번을 경험해도 그 기다림의 초조함과 설렘은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는 게 더 신기하다.
셋, “그거 아직도 써?”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
새 기기를 놔두고 굳이 오래된 물건을 꺼내 쓰면 주변에서 꼭 한 번은 이 질문을 듣게 된다. 그때마다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사실 스스로도 이 물건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넷, 단종된 부품을 찾아 헤매는 탐정 놀이
배터리 하나, 스트랩 하나가 단종돼서 대체품을 찾아 이 커뮤니티 저 커뮤니티를 뒤지다 보면 어느새 밤이 깊어 있다. 특히 오래된 카메라 노출계에 맞는 배터리처럼 아예 생산이 끊긴 부품을 구할 때는 대체 규격과 어댑터까지 알아봐야 해서 품이 많이 든다.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원하던 부품을 마침내 찾아냈을 때의 성취감은 그 자체로 취미의 일부가 된다.
다섯, 며칠 안 찼더니 멈춰 있는 시계를 발견했을 때
오토매틱 시계를 서랍에 며칠 넣어뒀다가 꺼냈을 때 바늘이 멈춰 있는 걸 보면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다시 태엽을 감아 시간을 맞추는 과정 자체에 은근한 애착이 생긴다.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일수록 오히려 정이 든다는 말이 이럴 때 실감 난다.
여섯, 새 기기보다 낡은 물건에 자꾸 손이 가는 순간
분명 더 좋고 편한 최신 기기가 옆에 있는데도, 결정적인 순간엔 이상하게 낡은 쪽을 집어 들게 된다.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감각을 이미 겪어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을 것이다.
일곱, 소모품이 줄어드는 걸 보며 아껴 쓰게 되는 습관
필름이든 테이프든 남은 양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이전보다 훨씬 신중하게 셔터나 녹화 버튼을 누르게 된다. 무제한으로 찍을 수 없다는 제약이 오히려 각각의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는 걸, 이 물건들을 써본 사람은 안다. 스마트폰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감각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오래된 기계가 가르쳐주는 셈이다.
여덟, SNS에 올렸을 때 돌아오는 예상 밖의 반응
무심코 찍어 올린 필름 사진이나 캠코더 영상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화질도 낮고 색감도 요즘 기준으론 어설픈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눈길을 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아홉,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의 동질감
카페에서, 여행지에서, 혹은 SNS에서 같은 브랜드의 카메라나 시계를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괜히 반갑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같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상한 동질감이 생긴다. 대화를 나누게 되면 십중팔구 부품 구하는 법이나 관리 요령 같은 실용적인 정보 교환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 취미 특유의 공통점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축인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넘어가, Y2K 감성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짚어본다.
불편함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 사이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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