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봄버 재킷, 밀리터리에서 패션으로 넘어온 배경

80년대 봄버 재킷, 밀리터리에서 패션으로 넘어온 배경

제트기 시대가 낳은 재킷

MA-1 비행 재킷은 1950년대 제트 항공기 시대의 요구에 맞춰 개발된 군용 장비였다. 좁은 조종석에서도 활동이 편하도록 설계된 이 재킷은, 애초에 패션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기능성 의류였다.

서프러스 상점에서 시작된 두 번째 삶

미국 정부는 60~70년대에 걸쳐 퇴역한 비행 재킷을 군수품 잉여 물자 상점을 통해 저렴하게 유통했다. 넉넉하지 않은 젊은이들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이었고, 이것이 MA-1이 민간 영역으로 흘러들어온 첫 통로였다.

서브컬처가 덧입힌 새로운 의미

영국의 모드족과 스킨헤드 문화는 70년대에 이 재킷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받아들였다. 이후 80년대에는 힙합과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이 재킷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는데, 일부 그룹에서는 오히려 스킨헤드 문화가 이 옷에 씌운 부정적 이미지를 전복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같은 옷이 전혀 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 셈이다.

패션지가 완성한 대중화

80년대 들어 더 페이스, i-D 같은 스타일 잡지들이 봄버 재킷을 지면에 자주 다루면서, 이 옷은 서브컬처를 넘어 주류 패션 담론 안으로 들어왔다. 디자이너들이 이 실루엣을 재해석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MA-1을 만든 회사, 알파 인더스트리

MA-1을 실제로 생산한 대표적인 회사는 1959년 설립된 알파 인더스트리다. 미국 국방부의 군수품 계약업체로 출발한 이 회사는 1963년 MA-1 생산 계약을 따내며 공식 제조사가 됐다.

같은 재킷, 완전히 다른 메시지

흥미로운 점은 이 재킷을 받아들인 집단들이 서로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스킨헤드 문화는 이 재킷을 배타적이고 강경한 이미지와 연결시켰지만, 80년대 힙합과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같은 옷을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소화하며 오히려 그 부정적 이미지에 도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뒤집으면 나오는 주황색의 이유

MA-1의 안감이 선명한 주황색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원래 조종사가 비상 상황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했을 때 수색대의 눈에 잘 띄도록, 재킷을 뒤집어 입으면 주황색이 겉으로 드러나게 설계된 것이다.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되는 지금은 이 기능이 실제로 쓰일 일이 없지만, 겉감과 안감의 색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 독특한 디자인 자체가 MA-1을 다른 재킷과 한눈에 구분되게 만드는 상징적인 디테일로 남아 있다.

소재에 따라 갈리는 계보

MA-1 계열 재킷은 오리지널 나일론 소재 외에도 새틴 소재로 만든 변형이 함께 유통됐다. 새틴 버전은 광택이 있고 가벼워 실내 활동복이나 팀 점퍼로도 즐겨 쓰였던 반면, 오리지널 나일론 버전은 방풍과 내구성이 뛰어나 실외 활동에 더 적합했다. 같은 실루엣이라도 소재에 따라 쓰임새가 갈리며 서로 다른 소비층을 형성했고, 이런 소재별 분화는 이후 브랜드들이 계절과 용도에 맞춘 다양한 파생 라인을 내놓는 출발점이 됐다.

“군용 장비에서 출발해 서프러스 상점을 거치고, 서로 다른 서브컬처의 손을 여러 번 거친 끝에 주류 패션이 된 MA-1의 여정은, 옷 한 벌이 얼마나 다양한 집단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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