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의 방한복에서 시작된 옷
가죽 재킷의 뿌리는 1차·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이 입던 방한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30~40년대에는 미군과 경찰의 표준 복장으로도 쓰였다. 즉 원래는 권위와 규율을 상징하는 옷이었다.
브랜도가 뒤집어놓은 이미지
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사건이 1953년 영화 “위험한 질주”였다. 말론 브랜도가 쇼트사의 “퍼펙토” 재킷을 입고 반항적인 오토바이족을 연기하며, 이 옷은 하루아침에 청년 반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차 대전 이후 기성 문화에 실망한 젊은 세대가 이 이미지에 강하게 반응한 결과였다.
방송사가 막으려 했던 재킷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시트콤 “해피 데이즈”의 폰지 캐릭터가 처음 기획됐을 때, 방송사 심의 부서는 가죽 재킷이 “범죄적이고 폭력적인 인상을 준다”며 대신 옅은 파란색 나일론 바람막이를 입힐 것을 요구했다. 이 일화는 당시 가죽 재킷이 얼마나 강한 반항의 기호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펑크가 덧입힌 또 다른 반항
70년대 펑크 무브먼트는 여기에 스터드와 안전핀, 밴드 로고를 더해 가죽 재킷을 반체제 메시지를 담는 캔버스로 활용했다. 기성 패션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 옷을 적극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80년대, 반항이 스타일이 되다
80년대에 이르러 가죽 재킷은 록 음악과 대중문화 전반에서 하나의 정석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반항의 상징으로 시작된 옷이 오히려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스타일이 됐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브랜도가 입었던 재킷을 만든 회사
브랜도가 입어 화제가 된 그 재킷은 1913년 설립된 쇼트라는 회사의 제품이었다. 처음에는 레인코트를 팔던 이 회사는 1925년 업계 최초로 재킷에 지퍼를 다는 시도를 했고, 1928년에는 창업자 어빙 쇼트가 직접 디자인한 오토바이 재킷을 롱아일랜드의 한 할리 데이비슨 대리점을 통해 5.5달러에 판매했다.
펑크가 못을 박다
70년대 펑크 밴드들은 이 클래식한 실루엣에 금속 스터드와 안전핀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태도를 담아냈다. 라모네스 같은 밴드가 이 재킷을 무대 위 유니폼처럼 입으면서, 퍼펙토는 오토바이족의 상징을 넘어 반체제 록 음악의 상징으로 한 번 더 의미를 갈아입었다.
5.5달러에서 시작된 값
처음 이 재킷이 팔리던 5.5달러라는 가격은 당시로서도 그리 비싼 축은 아니었다. 오토바이 대리점을 찾은 실사용자를 위한 실용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도와 펑크를 거치며 상징성이 켜켜이 쌓인 지금은, 같은 이름의 재킷이라도 어느 시기에 만들어졌고 어떤 문화와 함께 소비됐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로 거래된다. 재킷의 물리적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위에 쌓인 이야기의 무게만큼 가격도 함께 무거워진 셈이다.
소재조차 흉내내기 어려운 이유
쇼트의 오리지널 퍼펙토는 말가죽을 사용했는데, 이는 소가죽보다 조직이 촘촘하고 질겨 오랜 세월이 지나도 형태가 잘 무너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후 등장한 저가 복제품들이 대개 소가죽이나 인조가죽을 쓴 것과 달리, 오리지널의 이런 소재 선택 자체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을 유지한 개체가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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