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간, 그 말, 그 행동 #001 · 표결 1,479건 전수 조사
김상욱(金相旭) · 1980년생 · 변호사
제22대 국회의원(울산 남구갑, 초선) → 제9대 울산광역시장
이 기록의 기준일: 2026년 8월 24일
본회의 표결 1,479건 · 대표발의 법안 32건 전수 조사
2024년 8월 1일 밤, 그는 민주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날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있었습니다. 무제한토론이라고도 하는데, 법안 통과를 막으려고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몇 시간이든 계속 말하는 겁니다. 표결을 못 하게 시간을 끄는 거죠.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국민의힘 초선 김상욱이었습니다. 막으려던 법안은 민생회복지원금법. 그 법을 낸 사람은 이재명 의원이었습니다.
그가 그날 한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법치국가의 대원칙은 헌법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권력욕으로 이러한 대원칙이 모두 묵살되거나 가벼이 다루어진다면 우리 헌법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현대의 아르헨티나 필리핀 이런 나라들을 보면 한 번 무너진 민주주의와 법치와 건전성은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큰 병이 됩니다.“
“정치인이 굴복하여 헌법을 파괴하는 것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있었던 것처럼 법적 수단으로 법치국가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정치적 이득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포퓰리즘을 막아내야 하고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합니다.“
“민주당의 일방적 법안 진행에 대해 반민주적, 반헌법적 요소가 있습니다.”
(2024년 8월 1일 제416회 국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회의록. 국회 영상기록상 이 토론의 기록 시간은 7시간 34분입니다. 위 인용은 국회도서관 발언 데이터베이스에서 확보한 일부입니다.)
넉 달 뒤, 같은 말이 자기 당 대통령을 향합니다
2024년 12월 4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 날 새벽입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기 당 지도부를 향해 말했습니다.
“당내 주류 세력이 내란의 공범이다.”
12월 7일,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던 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12월 10일 오전 9시 40분, 그는 여당 의원 중 처음으로 탄핵 찬성을 공개 선언합니다.
“이번 비상계엄은 사유가 없어 반헌법적이고, 목적이 정치적 반대세력 척결이어서 반민주적이다.”
12월 13일, 국회 출입문 앞에서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과 말다툼이 붙습니다. 그때 이 문장이 나왔습니다.
“이 나라의 왕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정 질서입니다.“
12월 14일,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본회의장에서 그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에서 내려왔습니다.“
넉 달 사이입니다. 8월에 민주당을 향해 쓴 “반민주적”, “반헌법적” 이라는 두 낱말이, 12월에는 자기 당 대통령을 향합니다. 문장의 구조도 거의 같습니다. 최고 기준으로 헌법을 놓고, 그 기준을 무너뜨리는 쪽을 지목하는 방식입니다.
이 글은 그 두 번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으로 따라간 것입니다.
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생년 | 1980년 |
| 지역구 | 울산 남구갑 |
| 선수 | 초선 |
| 2024년 총선 | 53.86% 득표, 민주당 전은수 후보에 12%p 차 승리 |
| 소속 변경 | 국민의힘 → 2025.5.8 탈당 → 2025.5.18 민주당 입당 |
| 현직 | 울산광역시장 (2026.7.1 취임) |
국회에 제출한 공식 약력은 딱 다섯 줄입니다.
前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前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
前 한국노총 울산본부 자문변호사
前 울산남구청, 울주군청 자문변호사
前 울산 남부서, 울주서, 중부서, 동부서 직협자문변호사
김상욱 전 의원은 울산의 남부서·울주서·중부서·동부서 등에서 폭넓은 경찰서 자문변호사 활동을 했습니다.
12년 뒤에 다시 불려나온 이름 한 줄
2012년, 그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첫 직장은 울산의 법무법인 정우였습니다. 그 사무실 대표가 송철호 변호사였는데, 나중에 울산시장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울산 지역 교수와 변호사 31명이 기자회견을 엽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송철호도 그 자리에 있었고, 명단에 김상욱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이 일은 12년 동안 아무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24년 3월, 그가 국민의힘 공천을 받은 직후에 문제가 됩니다. 그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정치적 성향 알지 못한 채 고용 변호사 생활을 하던 시절 고용주에 의해 일어난 일”
“당시엔 정치에 관심이 없던터라 정치 성향이 강한 사무실에 오래 있는 게 불편해 1년만에 다른 사무실로 옮겼다”
“지지선언한 기억이 없으나, 오래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고용주에 의해 임의로 작성되거나, 권유로 인해 부주의하게 작성된 것 같다”
(2024년 3월 한국경제·뉴스1 보도)
그리고 이 이름 한 줄은 13년 뒤에 또 불려나옵니다. 2025년 5월 그가 국민의힘을 탈당했을 때, 한 보수 매체가 이런 제목을 달았거든요 — “‘文 지지 전력’ 김상욱 탈당에 국민의힘 ‘반색’”.
기록이라는 게 이렇게 작동합니다. 2012년 기자회견장에 이름 한 줄이 남았고, 그게 12~13년 뒤에까지도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이후 그는 법무법인 우덕을 거쳐 2014년에 자기 사무실을 열었고, 2017년에 법무법인 더정성을 세웁니다. 울산에서 노동사건과 부동산 사건을 주로 맡았습니다. 한국노총 울산본부, 울산 지역 경찰서 네 곳의 직장협의회, 울산남구청과 울주군청의 자문변호사를 했고요. 지역 방송에서 시사 프로그램 진행도 했습니다.
그를 국회로 보낸 것은 한동훈이었다
2024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그는 1차 심사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3월 15일에 다시 공천을 받습니다. 국민추천제라는 제도를 통해서였습니다.
이름은 ‘국민 추천’인데, 실제로는 당 지도부가 특정 지역을 골라 후보를 내려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제도를 만든 사람이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한동훈입니다. 한동훈이 울산 남갑을 이 제도의 대상 지역으로 지정했고, 그 자리에 김상욱이 들어갔습니다. 예비후보 중에 이 제도로 공천받은 사람은 그가 유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회에 들어간 순간부터 친한동훈계로 분류됩니다.
선거는 접전이었습니다. 투표 열흘 전 여론조사에서 39.8% 대 39.6%.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가는 차이였죠. 그런데 본선에서는 53.86%를 얻어 12%p 차로 이깁니다.
공천 직후에는 문재인 지지선언 건 말고도 의혹이 하나 더 나왔습니다. 울산의 주택개발 사기 사건에 그의 계좌가 사용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법률 서비스 관행에 따라 처리한 것으로 법적 문제가 없다”, “신탁회사가 정식으로 계좌를 개설하기 전에 예약금을 지정된 변호사가 받아 신탁사로 송금한 것이다.” (2024년 3월 한국경제 보도)
의원이 되자마자 그가 손댄 것
국회의원이 직접 발의한 법안을 대표발의라고 합니다. 그가 대표발의한 법안은 임기 중 32건이었습니다.
그중 첫 세 건은 전부 2024년 7월 12일 같은 날 나왔습니다.
| 날짜 | 법안 |
|---|---|
| 2024.7.12 | 경찰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 |
| 2024.7.12 | 공무원연금법 |
| 2024.7.12 | 공무원 재해보상법 |
앞에 울산의 경찰서 직협자문변호사 활동을 했던 약력을 기억하시죠?
직협은 직장협의회의 줄임말입니다. 경찰관들의 근무 여건 같은 걸 다루는 조직이죠. 그가 변호사 시절에 울산 경찰서 네 곳의 법률 자문을 맡았고,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경찰 처우에 관한 법을 냈습니다.
32건이 어느 위원회 소관이었는지 세어보면 이렇습니다.
- 행정안전위원회 15건 (경찰·소방·지방세)
- 문화체육관광위원회 3건
- 나머지 위원회에 1~2건씩
절반 가까이가 행안위 소속일 때 낸 법안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 결과 | 건수 | 무슨 뜻이냐면 |
|---|---|---|
| 수정가결 | 1건 | 일부 고쳐서 통과됐다는 뜻 |
| 대안반영폐기 | 9건 | 비슷한 법안들을 하나로 합칠 때 내용이 흡수돼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버려진 건 아니지만 그의 이름으로 남지는 않습니다 |
| 미처리 | 22건 |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
통과된 건 딱 하나, 건강가정기본법입니다.
법안에 이름을 나란히 올린 사람들
법안을 낼 때는 다른 의원 아홉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이걸 공동발의라고 하는데, 누가 이름을 빌려주느냐가 그 사람의 인간관계를 보여줍니다.
32건을 탈당일(2025년 5월 8일) 기준으로 갈라봤습니다. 탈당 전 26건, 탈당 후 6건입니다.
| 구간 | 가장 자주 이름을 올린 사람 |
|---|---|
| 탈당 전 (26건) | 조지연 20 · 김선교 20 · 박준태 20 · 서천호 15 · 박덕흠 15 — 전원 국민의힘 |
| 탈당 후 (6건) | 정준호 6 · 박정현 5 · 박홍배 5 · 이학영 4 · 진선미 3 — 전원 더불어민주당 |
이름이 통째로 갈아치워집니다. 당을 옮긴다는 게 실무에서 무엇을 뜻하는지가 이 표에 그대로 나옵니다.
그런데 딱 한 건이 예외입니다. 2025년 9월 8일에 낸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입니다. 공동발의자 아홉 명 중 일곱 명이 옛 당 동료거나 다른 당 사람이었습니다. 국민의힘 김예지·성일종·조경태·강대식·이종배, 그리고 개혁신당 이준석·천하람.
탈당 후 여섯 건 중에서 옛 당 동료가 이름을 올린 법안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가 보육 법안이었습니다.
참고로 탈당 후에 낸 여섯 건은 전부 미처리로 임기가 끝났습니다.
그가 국회에서 실제로 쓴 말
국회도서관 발언 검색에서 그의 이름이 함께 잡힌 발언이 102건, 61,847자입니다. 여기에는 한계가 하나 있습니다. 이 검색은 “김상욱”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발언만 걸러냅니다. 그래서 102건 대부분이 “울산 남구갑 김상욱입니다”로 시작하는, 회의에서 그가 처음 입을 여는 자리입니다. 그가 국회에서 한 말 전부가 아닙니다.
그 한계를 알고 보면, 이 표본은 오히려 쓸모가 있습니다. 매번 처음 꺼내는 말이 모여 있다는 뜻이니까요. 낱말이 몇 번 나오는지 세어봤습니다. 붙어 있는 형태까지 포함해서 셌습니다. 예를 들어 ‘경찰’에는 경찰관·경찰청이 함께 들어갑니다.
울산(108) · 경찰(93) · 국민(68) · 미국(67) · 북한(59) · 수사(54) · 법안(42) · 외교(39) · 통일(35) · 예산(32) · 여성(29) · 평화(29) · 헌법(27) · 폭력(27) · 시위(24) · 한반도(23) · 집회(20) · 소방(16) · 대의(16) · 포퓰리즘(15) · 국가론(14) · 공정(12) · 법치(11) · 숙의(7) · 삼권분립(5)
크게 네 갈래로 나뉩니다.
지역구. 울산이 108회로 압도적 1위입니다. 초선 의원이 지역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당연합니다.
외교통일위원회. 미국, 북한, 통일, 한반도, 평화. 여기서 흥미로운 게 “2국가론”입니다. 국회의원이 잘 안 쓰는 말이거든요. 찾아보니 그는 이 말을 세 갈래로 갈라 씁니다. 북한 김여정의 담화는 “적대적 2국가론”, 1970년 동독 호네커의 노선은 “2민족 2국가론”, 그리고 자기가 주장하는 것은 “평화적 2국가론”입니다. 남이 쓰는 같은 말과 자기가 쓰는 말을 굳이 갈라놓는 겁니다.
그러면서 1969년 서독 총리 브란트의 ‘1민족 2국가론’을 들고, “독일 기본법은 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면서 통일 정책을 논합니다.
행정안전위원회. 경찰, 수사, 집회, 시위, 소방, 안전. 앞에서 본 그의 변호사 이력과 그대로 겹칩니다.
여성가족위원회. 여성, 폭력, 피해자. 그는 이 위원회의 국민의힘 간사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갈래가 이 사람의 특징입니다. 헌법(27) · 포퓰리즘(15) · 공정(12) · 법치(11) · 대의(16) · 숙의(7) · 삼권분립(5).
“헌법”이 27번 나오는데, 구호로 쓰인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 헌법 57조를 들고 참고인으로 나온 교수에게 질의합니다. 57조가 뭐냐면,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는 조항입니다. 국회가 마음대로 예산을 늘릴 수 없다는 뜻이죠.
그가 사용한 “헌법”은 거의 매번 조문을 근거로 대기 위하여 사용한 케이스입니다.
결정의 순간 ① —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00분 41초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됩니다. 국회는 그날 밤 본회의를 엽니다.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표결이 진행되던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00분 41초, 김상욱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의 첫 번째 당론 이탈입니다. — 그날 이 표결에 들어간 국민의힘 의원은 108명 중 18명이었습니다. 나머지 90명은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이 표결은 기명 투표라 300명 전원의 기록이 국회 공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권성동, 추경호, 안철수, 김예지, 박수영 모두 ‘불참’으로 적혀 있습니다.
같은 날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추경호 원내대표를 포함한 당 주류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내 주류 세력이 내란의 공범”이다. 이튿날에는 다른 의원 몇 명과 함께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는 개헌을 요구했습니다.
그가 그날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는 1년 뒤 본인이 말했습니다.
“계엄 해제 표결 뒤 국힘 의원총회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았고, 추경호 원내대표의 눈초리를 잊지 못한다.”
(2025년 11월 30일 보도)
결정의 순간 ② — 고심했던 그의 흔적
12월 7일,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은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고 의원총회를 열어 사실상 다 같이 나가버립니다. 표결장에 남은 국민의힘 의원은 세 명뿐이었습니다. 김상욱, 김예지, 안철수.
그날 김상욱이 한 일을 뜯어보면 이렇게 갈립니다.
| 무엇을 | 그는? |
|---|---|
| 표결장에 남을 것인가 | 국민의힘의 당론은 퇴장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남았습니다. |
| 어떻게 투표했나 | 투표에 참여는 했지만 탄핵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
| 표결 뒤에 무슨 말을 했나 |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탄핵소추안 표결은 무기명 투표라 누가 어떻게 찍었는지가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가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은 본인이 사흘 뒤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입니다.)
그는 사흘 뒤에 직접 설명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
“당에 속해 있으므로 당론을 존중해 반대 표를 행사하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헌정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
여기서 넉 달 전 8월 1일을 다시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떠한 정치적 이득이 있다 하더라도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합니다.”
12월 7일, 그는 헌정 질서가 보수의 가치라고 말하면서, 당론을 존중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결정의 순간 ③ — 12월 10일에서 14일까지
12월 10일 오전 9시 40분, 그는 기자회견을 엽니다. 여당 의원 중에 처음으로 탄핵에 찬성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이 됩니다. 대통령이 즉시 물러나야 한다고 했고, 이때 앞에서 본 그 문장 — “사유가 없어 반헌법적이고, 목적이 정치적 반대세력 척결이어서 반민주적” — 이 나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그는 두 건의 표결에 들어갑니다.
| 안건 | 김상욱 | 전체 |
|---|---|---|
| 내란범죄혐의자 신속체포요구 결의안 | 찬성 | 찬성 190 / 반대 95 |
|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수사요구안 | 찬성 | 찬성 209 / 반대 64 |
반대표가 각각 95표, 64표 나온 표결입니다. 그 반대표의 대부분이 그가 속한 당에서 나왔습니다. 이건 본인 진술이 아니라 국회 공개 기록입니다.
12월 13일 아침 8시부터 그는 국회 출입문 앞에 서서 팻말을 들고 동료 의원들을 설득합니다.
12월 14일,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그는 찬성표를 던집니다. 본회의장에서 울면서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에서 내려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한동훈 대표가 그에게 자기 목도리를 걸어줬습니다.
그가 왜 하필 피켓을 들고 나갔는지는 나중에 본인이 방송에서 설명했습니다. 이유가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표결 자체가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12월 7일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다 같이 나가버려서 개표조차 못 했던 일이 있었죠.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표결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냥 나가버리기 어렵게 만들어야 했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욕을 대신 먹는 자리에 서야 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가 12월 14일을 마지막 기회로 본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당시 당 안에서는 “2~3주만 버티면 지지층이 결집해서 탄핵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말을 위험하게 들었습니다.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자리에 남아 공권력을 쥔 채로 국민이 둘로 갈라져 대치하는 상황 — 그는 그것을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봤다고 말했습니다.
탄핵 표결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는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것이 있습니다.
탄핵소추안 표결은 무기명 투표입니다. 누가 어떻게 찍었는지가 공개되지 않습니다. 국회 표결 자료를 뒤져보면 2024년 12월 7일과 12월 14일에는 처리 의안이 아예 0건입니다. 그날 표결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상욱이 1차에서 반대표를, 2차에서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은 전부 본인이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입니다. 특히 12월 7일은 투표자 수가 모자라 개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투표지에 무엇이 적혔는지는 본인 말 외에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탄핵안 주변의 안건들은 전부 기명 표결입니다. 그의 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날짜 | 안건 | 김상욱 | 전체 |
|---|---|---|---|
| 2024.12.4 오전 1시 |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 찬성 | 190명 전원 찬성 |
| 2024.12.10 | 내란범죄혐의자 신속체포요구 결의안 | 찬성 | 찬성 190 / 반대 95 |
| 2024.12.10 | 내란 진상규명 특검 수사요구안 | 찬성 | 찬성 209 / 반대 64 |
| 2024.12.12 | 내란 진상규명 특검법안 | 불참 | 찬성 195 / 반대 86 |
| 2024.12.12 | 김건희 주가조작 특검법안 | 불참 | 찬성 195 / 반대 85 |
| 2024.12.31 |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계획서 | 찬성 | 찬성 192 / 반대 71 |
| 2025.1.8 | 내란혐의·제주항공 참사 긴급현안질문 실시의 건 | 찬성 | 찬성 202 / 반대 3 |
| 2025.1.17 | 내란·외환 진상규명 특검법안 | 불참 | 찬성 188 / 반대 86 |
| 2025.2.12 | 내란 국정조사특위 활동기간 연장의 건 | 불참 | 찬성 129 / 반대 58 |
| 2025.2.27 | 명태균 불법 선거개입 특검법안 | 찬성 | 찬성 183 / 반대 91 |
표를 보면 이런 게 눈에 들어옵니다. 결의안과 수사요구안, 국정조사에는 찬성했고, 특검법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의결 시각을 확인해보니 그렇게 단정하기 어려웠거든요.
2025년 1월 17일이 그렇습니다. 그는 그날 오후 2시 19분, 2시 22분, 2시 24분에 세 건을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내란·외환 특검법 표결은 밤 11시 29분이었습니다. 아홉 시간 뒤입니다. 그 법안을 골라서 피한 것인지, 그 시간에 국회에 없었던 것인지는 이 자료로 갈라낼 수 없습니다.
2025년 2월 27일은 더 복잡합니다. 오후 2시 17분부터 표결에 참여하다가 3시 13분부터 불참이 시작되는데, 3시 24분에 다시 찬성표가 나옵니다. 들어왔다 나갔다 한 겁니다. “일찍 자리를 떴다”는 설명도 맞지 않습니다.
같은 ‘불참’이라도 성격이 다릅니다. 뭉뚱그려 읽으면 없는 이야기를 만들게 됩니다.
결정의 순간 ④ — 2주 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그의 갈등과 고민이 또 한번 보여지는 기록입니다.
12월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표결이었습니다. 그는 오전에 찬성한다고 밝혔다가, 오후에 기권으로 바꾸고 표결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표결도 무기명이라 개인 기록은 없습니다. 본인이 밝힌 내용입니다.)
참고로 그날 본회의에는 다른 안건 39건이 함께 올라왔는데, 그는 그중 29건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국회에 있었던 겁니다.
이 기록 또한 빼지 않고 수록하겠습니다. 이것도 그가 실제로 한 행동이니까요. 누구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그 고민과 판단을 기억할 것이고, 지금 현재에도 그의 정치적 행보와 업적이 쌓여가는 만큼, 국민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표결 1,479건을 전부 뒤졌습니다
국회는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법안에 어떻게 투표했는지를 전부 공개합니다. 그래서 그의 임기 중 본회의 표결을 하나도 빼지 않고 조회했습니다. 대상 안건 1,627건 중 기록이 확인된 게 1,479건입니다.
전체를 세어보면 이렇습니다.
찬성 897 · 불참 569 · 반대 11 · 기권 2
‘불참’도 공식 기록으로 남습니다. 표결장에 안 들어갔다는 뜻이죠.
임기 전체 참여율은 61.5%입니다. 같은 기간 국회의원 305명 가운데 낮은 쪽에서 79번째입니다. 하위권이긴 하지만 특별히 낮은 편은 아닙니다. 참고로 최하위권은 20~30%대인데, 여기에는 국무총리나 장관을 겸한 의원들이 섞여 있습니다. 국무위원은 본회의 표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표결이 있을 때 그가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만 시기별로 세어보겠습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기권이든, 일단 표결장에 들어간 것을 ‘참여’로 봤습니다.
| 시기 | 표결 수 | 참여횟수 | 불참횟수 | 참여율 |
|---|---|---|---|---|
| 2024.5~11 (계엄 이전) | 218 | 161 | 57 | 73.9% |
| 2024.12 (계엄·탄핵) | 169 | 129 | 40 | 76.3% |
| 2025.1~5.7 (탈당 전) | 282 | 96 | 186 | 34.0% |
| 2025.5.8~ (탈당·입당 후) | 810 | 524 | 286 | 64.7% |
다른 시기의 참여율과 다르게, 2025년 1월부터 5월 초까지 넉 달 동안만 표결 참여율이 뚝 떨어졌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넉 달 동안 그는 반대표도 기권표도 한 번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표결에 들어간 경우, 찬성표만을 던졌습니다. 꼭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고 판단했던 표결에는 참석을 했다는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월별로도 리서치 해보았습니다.
| 월 | 표결 수 | 참여횟수 | 불참횟수 | 참여율 |
|---|---|---|---|---|
| 2025년 1월 | 28 | 27 | 1 | 96.4% |
| 2025년 2월 | 98 | 34 | 64 | 34.7% |
| 2025년 3월 | 73 | 0 | 73 | 0% |
| 2025년 4월 | 38 | 35 | 3 | 92.1% |
| 2025년 5월 (탈당 전 7일) | 45 | 0 | 45 | 0% |
202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이 73번 있었습니다. 그가 참여한 것은 몇 번일까요.
한 번도 없습니다. 0번입니다.
항상 성실한 모습의 그이지만, 25년 3월만큼은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5월도 마찬가지입니다. 탈당 여드레 전인 5월 1일 하루에 표결 45건이 몰려 있었는데, 한 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해당 기간에 국민의힘 전체가 당론으로 그 표결들을 거부했었나? 싶어서 같은 날, 같은 법안에,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은 어떻게 했는지도 확인해보았습니다.
2025년 3월 13일 표결 네 건
| 의원 | 노인복지법 | 개인정보보호법 | 하도급법 | 발달장애인법 |
|---|---|---|---|---|
| 김상욱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 안철수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 김예지 | 찬성 | 찬성 | 찬성 | 찬성 |
| 권성동 | 불참 | 찬성 | 찬성 | 찬성 |
| 박수영 | 찬성 | 찬성 | 기권 | 찬성 |
범위를 더 넓혀서, 그가 한 표도 던지지 않은 날에 본회의에 있던 300명 전원이 어떻게 했는지도 세어봤습니다.
| 날짜 | 국민의힘 참여율 | 더불어민주당 참여율 |
|---|---|---|
| 2025.2.27 (김상욱 60건 불참) | 72.9% | 92.2% |
| 2025.3.13 (52건 불참) | 83.2% | 97.0% |
| 2025.3.20 (21건 불참) | 88.8% | 91.6% |
| 2025.5.1 (45건 불참) | 79.4% | 94.6% |
최소한 당이 당론으로 정한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했고, 불참했던 국회의원은 소수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철수는 넉 달 전 12월 7일, 탄핵 표결장에 남았던 그 세 명 중 한 명입니다.
같은 시기에 그의 자리도 바뀝니다. 국회 공식 기록을 보면 2025년 1월 13일, 그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로 옮겨집니다. 상임위를 옮기는 걸 사보임이라고 하는데, 회사로 치면 부서 이동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봤듯이 그가 낸 법안 32건 중 15건이 원래 있던 행안위 소관이었습니다. 자기 일을 하던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간 겁니다.
그리고 2025년 5월 8일 — 탈당한 바로 그날, 농해수위와 여가위 임기가 끝나고 행안위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는 왜 계속 국민의힘에 있었을까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배신자 취급을 받고, 상임위에서 밀려나고, 당원들이 제명을 시도하는데도 그는 2025년 5월까지 국민의힘에 남아 있었습니다. 왜였을까요.
나중에 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설명한 게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국민의힘 안에서 자기와 생각을 같이하는 의원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드는 것, 안에서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는 겁니다. 그래서 밖에서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민주당 의원들과 손잡는 모습이 보이면 당내에서 설득할 수 없게 되니까요.
탄핵 표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찬성표가 나와야 통과되는 구조였으니, 그의 목표는 당 밖이 아니라 당 안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이 설명이 맞다면, 앞에서 본 2025년 봄의 숫자들도 다르게 읽힙니다. 그는 설득이 가능하다고 믿는 동안 남아 있었고, 불가능해진 시점에 나온 게 됩니다.
다만 이건 본인이 나중에 한 설명입니다. 자기 행동을 스스로 정리한 이야기이고, 그대로 사실이라고 확정하기 보다는, 여기서는 “본인은 이렇게 설명했다”까지만 적겠습니다.
그가 반대표를 던진 11건
1,479번 중에 그가 명시적으로 “반대”를 누른 건 11번입니다. 전체의 0.7%죠. 그중 하나가 눈에 띕니다.
2024년 9월 26일, 방송법 개정안. 찬성 216명, 기권 5명, 그리고 반대 1명.
국회의원 300명 중에 반대한 사람이 딱 한 명이었고 김상욱이었습니다.
나머지 10건은 한국방송공사 결산 승인안, 법원조직법, 방송통신위원회 관련 감사요구안 두 건, 소득세법, 사립학교법, 단말기유통법 폐지법률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항공보안법, 주차장법입니다.
김상욱의 말말말
| 시점 | 그가 한 말 | 비고 |
|---|---|---|
| 2024.12.7 | “자유민주주의의 헌정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 | 국민의힘 / 탄핵 반대표 |
| 2024.12.13 | “이 나라의 왕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정 질서입니다” | 국민의힘 / 탄핵 설득 중 |
| 2025.5.1 | “국힘, 1950년대에 갇혀 있어… 솔직히 민주당이 더 보수 가치에 충실“ | 국민의힘 (탈당 7일 전) |
| 2025.5.8 | “극우보수와 수구보수가 아닌 참 민주보수의 길을 걷겠다” | 탈당 선언 |
| 2025.5.18 | “더 건강한 민주당을 만들겠다” | 민주당 입당 |
| 2026.6.4 | “민주혁명의 결실” | 울산시장 당선 |
넉 달뒤, 다른 상대에게.
| 2024.8.1 — 민주당을 상대로. | 2024.12.10 — 윤석열을 상대로. | |
|---|---|---|
| 최고 기준으로 든 것 | “법치국가의 대원칙은 헌법” | “왕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정 질서” |
| 위험하다고 지목한 것 | “한 사람의 권력욕으로 헌법이 무너진다” |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
| 쓴 표현 | “반민주적, 반헌법적 요소” |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 |
이 대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년 가까이 지난 2025년 10월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록에도 같은 낱말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엔 언론 보도가 아니라 국회 공식 기록입니다.
“남북 간 혐오와 갈등을 일부러 조장하고 이에 기반해서 적대적 공생에 기생하려는 일부 정치세력의 욕망이 있어 왔습니다. 이들의 욕망은 (…) 도리어 반민주적·배타적 기득권 독점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대립을 유발하고 악용해 왔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북한 적대와 12·3 쿠데타 시도가 대표적인 적대적 공생·기생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2025년 10월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록)
2024년 8월 민주당에게 썼던 그 낱말이, 2025년 10월에는 국회 속기록 안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향합니다. 두 발언 모두 국회 공식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탈당, 그리고 그 뒤
2025년이 되면서 당내에서 그의 자리는 계속 좁아집니다.
1월 8일,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탈당하라고 요구합니다. 2월 14일에는 울산시당위원장에서 스스로 물러납니다. 2월 하순에는 친한동훈계 의원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서 나가게 됩니다. 4월에는 지역 당원들이 두 차례 그를 당협위원장에서 빼내려고 시도했다가 무산됩니다.
3월 25일, 그는 한동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한동훈 짝사랑… 목도리도 걸어주신 감사한 분”
4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당에 네 가지를 요구합니다. 윤 전 대통령 제명, 계엄에 대한 사과, 한덕수와의 야합 금지, 추경 합의.
5월 8일,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탈당을 선언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의힘 선배·동료 의원들과 당원, 지지자께 송구함을 올리며 국민의힘을 탈당한다.”
“정당 기능을 상실한 국민의힘을 아픈 마음으로 떠난다.”
“앞으로 극우보수와 수구보수가 아닌 참 민주보수의 길을 걷겠다.”
“2025년 오늘의 보수 가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공정, 합리, 개방, 포용, 자유를 기준삼아 정치 판단을 내려달라.”
일주일 뒤인 5월 15일, 이재명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합니다.
다음 날 익산 유세장에서 이재명과 포옹합니다.
넉 달 전에는 그가 마이크를 잡고 막아섰던 대상이지만, 헌법 수호의 가치관을 잣대로 하는 그이기에 한편으로는 납득이 되는 정치의 아이러니일까요.
5월 18일, 광주 5·18 기념식 현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선언합니다.
울산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2026년 2월 25일, 그는 울산시장 출마를 선언합니다. 그 자리에서 자기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배신자로 저를 규정하고 비난하며 정치적, 사회적·도덕적 비난을 계속해왔고, 울산의 기득권은 저를 기득권을 위협하는 자로 인식하여 적대하여 왔으며, 울산의 민주 진영에서조차 일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굴하지 않겠다… 저는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옛 당, 지역 기득권, 그리고 새로 들어간 진영. 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도 정면 돌파를 선언했습니다.
2026년 6월 3일, 이겨내고야 맙니다. 국민의힘 현직 시장 김두겸을 꺾고 울산시장이 됐습니다. 득표율 49.02% 대 45.45%, 차이는 3.57%p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선거 닷새 전에 진보당 김종훈 후보와 단일화한 것이 컸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7월 1일 취임했습니다. 시장이 되고 처음 결재한 안건은 120 울산민원센터 설립이었습니다. 그는 이 조직을 “조사권 갖춘 민주 시민의 힘 있는 조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민공론화위원회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조직을 개편하면서 노동위원회와 감사청렴위원회를 새로 만들었고, 경제산업실은 AI혁신산업실로 바꿨습니다.
언론이 그에게 붙인 수식어들
2025년 5월 8일 탈당은 여러 매체가 다뤘습니다. 그리고 매체마다 그의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탄핵찬성파 김상욱” — 그가 1차 표결에서 당론을 따라 반대표를 던진것은 맞지만, 본인 스스로가 공개적으로 설명한 배경이 있었죠. 상황을 종합적으로 망라하는 표현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표현이라고 보았습니다.
“‘文 지지 전력’ 김상욱” — 2012년 지지선언 명단 이슈인데, 12~3년이 지난 시점에서 파묘(?)하여 본인이 이미 부인한 일을 확정된 사실처럼 붙인 케이스로 해석됩니다.
이 두 표현의 공통점이 보이시죠? 목적성을 둔 언론의 서술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미래를 알 수 있을까
정치인을 볼 때 현재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이 과거에 한 말과 행동을 보면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할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저는 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김상욱 전 의원은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소속 정당이 바뀌었고, 그 과정이 전부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이니, 이 카테고리글의 시작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법”과 “숙의”라는 두 단어가 그의 발언에 계속 나옵니다. 2024년 8월에 민주당을 향해서, 2024년 12월과 2025년 10월에 자기가 속했던 당의 대통령을 향해서, 2026년 여름에는 자기가 이끄는 시청 조직을 향해서. 겨눈 상대는 매번 달랐지만 쓰는 말은 그대로였습니다. 그의 행동은 얼핏보았을 때, 무언가를 많이 왔다갔다 바꾼 것 처럼 비쳐질지 모르나, 그의 가치관에 따라 비추어 다시 조명해본다면, 일관성이 있었다고도 보입니다.
“어떠한 정치적 이득이 있다 하더라도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고 말했던 그는 24년 12월 7일에 국민의힘의 당론을 따라 반대표를 던지기는 했지만, 이후로 충분한 설명과 행동(피켓 시위 등)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가치관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는 정해줍니다. 그런데 어느 편에 설지까지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그건 상황이 정합니다.
2025년 3월에 많은 수의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본인은 그 무렵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고 회고했고 당 안에서 설득하려 버텼다고 설명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그의 고민의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모두가 각자 판단하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김상욱은?
그는 지금 울산시장입니다. 위에서 본 흐름이 맞다면, 앞으로 이런 것들이 보일 겁니다.
하나. 그의 판단 기준이 정말 “헌법과 절차”라면, 자기 진영에 불리한 절차 문제가 생겼을 때도 같은 잣대를 댈 것입니다. 2024년 12월에 자기 당 대통령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이게 이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둘. 2024년 8월에 그는 “숙의 없는 대중 지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서 대의제를 옹호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에는 시민공론화위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두 입장이 함께 성립하려면 그 위원회가 실제로 숙의하는 기구여야 합니다. 이름만 걸린 자문 기구에 그친다면, 2024년의 그가 비판했던 그 모습에 가까워집니다.
셋. 그의 입법은 경찰·소방·지방세에 몰려 있었습니다. 시정은 이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의 활동이 필요한 ‘행정’이지요. 그의 전문성에 더해서 어떻게 좋은 시정을 펼칠지 기대해보겠습니다.
출처
- 국회 열린국회정보 공개 API — 의원 정보 통합, 위원회 경력, 발의법률안, 본회의 처리의안, 본회의 표결정보
- 국회도서관 발언 빅데이터 — 제22대 국회 발언 중 “김상욱” 검색으로 잡힌 102건(그의 전체 발언이 아님)
- 제416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 회의록 (2024.8.1)
- 제22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록 (2025.10.14)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
보도 경향신문, 한국경제, 뉴스1, MBC, JTBC, 서울신문, 뉴시스, 오마이뉴스, 부산일보, 한국일보, 울산매일, 뉴데일리 등. 인용한 매체와 날짜는 본문에 적었습니다.
정정 요청
이 기록에 사실과 다른 것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확인 후 수정하도록하겠습니다.
댓글로 의견이나 궁금하신 점을 적어주시면, 감사히 수렴하겠습니다.
이 글은 평가가 아니라 기록입니다. 판단은 읽는 분의 몫입니다. 기준일 2026년 8월 24일 · centi-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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