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4월, 낯선 이름의 디지털 카드게임 하나가 스팀에 올라왔다. Kards. 마법도, 용도, 판타지 생물도 없었다. 대신 독일군 전차와 소련군 저격수, 미군 공수부대가 카드 위에 그려져 있었다. 실제 역사 카드게임이라는 낯선 문법이 어떻게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이 흥행 공식이 정치 카드게임 폴리티카(PolitiCA)에 어떤 힌트를 줬는지 살펴본다.
개발사는 1939 Games. CCP Games(이브 온라인 개발사) 출신들이 2015년에 설립한 아이슬란드 스튜디오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만든 Kards는 미국, 독일, 소련, 영국, 일본이라는 다섯 개 실존 국가를 메인 세력으로 삼고, 폴란드·이탈리아·프랑스·핀란드 같은 동맹국 카드를 조합해 덱을 짜는 구조로 설계됐다. 판타지 세계관 대신 실제 2차대전이라는 무대를 통째로 가져온 셈이다.

참호와 전선을 그대로 옮긴 카드
Kards가 흥미로운 건 단순히 국가 이름만 빌려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카드 배치 자체가 참호전을 연상시키는 ‘전선(Front Line)’ 시스템으로 짜여 있고, 유닛을 배치하면 실제 전쟁처럼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하는 감각을 준다. 카드 아트워크는 2차대전 당시의 모병 포스터와 선전물, 그리고 1970~80년대 프라모델 박스아트에서 소스를 따왔다고 알려져 있다. 판타지적 과장 없이도 전쟁이라는 소재가 충분히 극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선택이다.
모병 포스터와 프라모델 박스아트에서 그림을 따왔다는 데서 좀 웃었다. 전쟁을 그리는 데 전쟁 사진이 아니라 전쟁을 팔던 그림을 가져다 쓴 셈이다.
실제 전투를 소재로 삼다 보니 카드 하나하나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미드웨이 해전처럼 이미 역사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카드 효과와 그림으로 재현된다. 플레이어는 그 사건을 몰라도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알고 있다면 카드 한 장을 낼 때마다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이 ‘아는 만큼 더 보이는’ 구조가 실제 역사 카드게임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다. 실제로 커뮤니티에서는 카드 하나를 두고 “이 전투는 실제로 이렇게 전개됐다”는 식의 역사 토론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학습의 매개체로도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구조는 양날이다. 아는 사람에게는 카드 한 장이 무거워지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잘 그린 그림으로 끝난다. 폴리티카를 만들면서 계속 걸리는 지점도 정확히 여기다.

마니아층이 흥행 공식이 됐다
이런 설계는 결과적으로 확실한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메타크리틱 등 리뷰 종합 사이트에서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출시 이후 꾸준히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며 장수하고 있다. 판타지나 SF 세계관의 TCG가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실제 역사라는 익숙하면서도 차별화된 소재 하나로 자리를 잡은 사례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 노르망디, 스탈린그라드, 진주만 — 를 카드 위에서 다시 만나는 경험 자체에 끌렸다.
Kards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free-to-play 방식을 택하면서도, 카드 팩 대신 인게임 재화로 카드를 직접 조합해 얻을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을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작위 뽑기에 기대지 않고도 원하는 카드를 착실히 모을 수 있다는 점이 장기 유저층을 붙잡아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화려한 확률형 아이템보다 꾸준한 수집과 덱 조합의 재미를 우선한 설계였다.
국가 대 국가에서 국내 정치로
폴리티카(PolitiCA)를 구상하면서 Kards의 이 성공 방식을 눈여겨봤다. 다만 배경 무대는 완전히 좁혔다. Kards가 ‘국가 대 국가’라는 거대한 전선을 그렸다면, 폴리티카는 그보다 훨씬 좁고 밀도 높은 무대 — 한국 현대정치사라는 국내 무대 — 를 택했다. 전선의 규모는 줄었지만, 밀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국경을 넘나드는 대신 한 세대, 한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촘촘하게 다룰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를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는 1편에서 다뤘는데, 그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실제 사건을 다루는 순간 오락성과 정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Kards가 특정 국가를 미화하거나 폄하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카드 디자인 곳곳에 남아있는 것처럼, 폴리티카 역시 특정 정파를 일방적으로 영웅화하거나 악마화하지 않는 선을 지키는 데 가장 공을 들였다.
폴리티카 역시 이 지점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 카드 하나하나가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무작위 뽑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직접 자신의 정치적 서사를 설계해나가는 방식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덱을 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행위가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게 Kards에서 가져온 또 하나의 설계 원칙이었다.
Kards가 증명한 건 결국 이런 것이다. 실제 역사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서사라서, 게임이 별도로 세계관을 창조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대신 그만큼 정확성과 균형에 대한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실존 국가를 다루든 실존 정치사를 다루든, 특정 편에 유리하게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카드 뒷면에 새기는 순간, 게임은 오락을 넘어 다른 무게를 지게 된다. Kards는 그 무게를 전쟁사로 짊어졌고, 폴리티카는 그 무게를 한국 현대정치사로 짊어지기로 했다. 둘 다 이미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히려 그 결말까지 가는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재구성하느냐가 게임의 완성도를 가르는 진짜 기준이 됐다.
Kards는 어떤 게임인가 —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개발사 | 1939 Games(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
| 출시 | 2020년 4월, 스팀(Steam) |
| 메인 세력 | 미국·독일·소련·영국·일본 |
| 과금 모델 | 무료(F2P) + 인게임 재화 카드 제작 시스템 |
| 핵심 시스템 | 참호전을 모사한 ‘전선(Front Line)’ 배치 구조 |
참고: Wikipedia 「Kards」, Steam 「KARDS – The WW2 Card Game」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것, 그것도 하나의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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