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일러스트 한 장이 명화가 되는 순간

카드 일러스트 한 장이 명화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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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만 6,000달러. 우리 돈으로 4억 원이 넘는다. 2022년 미국 경매에 나온 종이 한 장의 낙찰가다. 그림물감도, 액자도 없다. 1999년에 인쇄된 트레이딩카드 한 장이 이 값에 팔렸다. 카드 일러스트 한 장이 명화가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초판 리자몽 카드, 4억 원이 넘는 이유

YTN과 한국경제 등 국내 매체가 일제히 보도한 이 경매는 헤리티지 옥션즈(Heritage Auctions)에서 열렸다. 낙찰된 카드는 1999년 초판으로 인쇄된 리자몽 카드였고, 감정업체에서 최고 등급, 완벽한 보관 상태로 평가받았다. 같은 시기 경매에서는 1998년판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 카드가 90만 달러(약 11억 원)에 낙찰되며 당시 공개 판매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초판이라는 희소성, 최고 등급이라는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카드에 그려진 그림 자체가 이 가격을 만든 세 축이다.

값의 축 하나가 보관 상태라는 게 이 시장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안 꺼낸 정도를 보는 것이라, 여기서는 한 번도 가지고 놀지 않은 카드가 가장 좋은 카드가 된다.

이 카드들의 원화를 그린 인물은 초기 포켓몬 TCG의 상징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아리타 미츠히로다. 벌바피디아(Bulbapedia) 자료에 따르면 그는 포켓몬 레드·그린 버전이 정식 출시되기도 전,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부터 카드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게임 속 스프라이트 이미지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초기 여섯 가지 에너지 타입의 심볼 디자인까지 맡았고, 지금까지 645장이 넘는 포켓몬 카드에 자기 그림을 남긴, TCG 역사상 가장 다작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 자신도 베이스 세트의 리자몽 카드가 자기 경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참고할 자료가 게임 속 도트 그림뿐이었다는 게 제일 눈에 남는다. 지금 억대에 팔리는 그림이 몇십 픽셀에서 출발했다는 뜻이다.

매직 더 개더링의 원화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현상이 포켓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매직 더 개더링의 원화 경매 시장도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았다. 2020년 헤리티지 옥션즈 경매에서 매직 알파 세트의 원화 5점이 총 48만 3,600달러(구매자 수수료 포함, 약 6억 3천만 원)에 팔렸는데, 그중 더글러스 슐러가 그린 “디모닉 튜터” 원화가 16만 8,000달러로 매직 원화 경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힙스터즈오브더코스트(Hipsters of the Coast)가 전했다. 이보다 앞서 “샤라자드” 카드 원화는 헤리티지 옥션즈에서 7만 2,000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기록을 세운 바 있다. mtg.art 같은 전문 거래 플랫폼까지 따로 생겨났을 정도로, 매직 원화는 이제 하나의 독립된 컬렉터 시장을 이루고 있다.

왜 카드 일러스트가 명화 취급을 받는가

가격을 가르는 또 다른 축은 ‘등급’이다. PSA(Professional Sports Authenticator) 같은 전문 감정업체는 카드의 모서리, 표면, 중앙 정렬 상태 등을 따져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매기는데, 최고 등급인 10등급과 그보다 한 단계 낮은 9등급 사이의 가격 차이가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벌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인쇄된 지 20년이 넘은 카드가 모서리 하나 닳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카드를 희소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폴리티카 역시 훗날 카드 상태 등급이 거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지금 인쇄 품질과 소재 선택에 더 신경 쓰게 된다.

손바닥만 한 카드에 그려진 그림이 왜 미술품 경매장까지 진출하는 걸까. 첫째는 원화의 유일성이다. 인쇄된 카드는 수백만 장씩 찍혀 나오지만, 그 그림을 그린 원본 원화는 세상에 단 한 점뿐이다. 둘째는 세대적 각인이다. 리자몽이든 디모닉 튜터든, 그 그림을 보고 자란 사람이 이제는 억대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 셋째는 서사다. 카드 한 장의 그림 뒤에는 그 카드가 게임 안에서 어떤 순간을 상징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쌓여 있다. 명화가 되는 조건은 결국 캔버스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았느냐다.

이 흐름을 대하는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건 아니다. 카드 원화가 억대에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정작 그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본인이 재판매 수익을 전혀 나눠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원화 소유권은 대개 제작사나 최초 구매자에게 넘어가고, 이후 경매를 거듭할 때마다 값이 뛰어도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최초 계약 시점에 정해진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명화 취급을 받는 그림 뒤에는 이런 불균형한 계약 구조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카드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 문단은 남의 얘기로 안 읽힌다.

정치 풍자화라는 독자적 예술 장르

이 지점에서 폴리티카(PolitiCA)의 카드 아트가 갖는 가능성이 보인다. 정치인을 재해석한 카드 그림은 단순한 게임 부속품이 아니라, 이미 오랜 전통을 가진 예술 장르인 “정치 풍자화(political caricature)”의 연장선에 있다. 신문 만평이 정치인의 특징을 과장해 시대상을 기록해온 것처럼, 폴리티카의 카드 한 장 한 장도 특정 시기의 인물과 사건을 시각적으로 압축해 담아낸다. 풍자화가 신문 지면 한 칸에서 인물의 표정 하나로 시대를 요약했다면, 카드 일러스트는 인물의 이력과 상징물, 당시의 사건까지 한 장의 구도 안에 함께 녹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압축해야 하는 장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신문 만평은 하루짜리 지면에서 소비되고 사라지지만, 카드는 게임이라는 형식 덕분에 반복해서 손에 쥐고, 들여다보고, 수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폴리티카가 카드 아트 계약을 설계할 때는, 인기가 생긴 이후의 몫까지 미리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포켓몬 카드 한 장이 4억 원에, 매직 카드 원화가 6억 원어치 팔리는 시장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다. 그림의 값어치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시간이 지나 그 그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쌓일 때, 비로소 값이 매겨진다. 폴리티카의 카드가 지금 당장 얼마짜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훗날 이 카드를 들여다볼 누군가에게 그 순간이 무엇을 의미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실제로 얼마에 팔렸나 — 경매 기록 셋

카드/원화낙찰가경매
1999년 초판 리자몽(PSA 10)약 33만 6천 달러헤리티지 옥션즈(2022)
1998년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약 90만 달러헤리티지 옥션즈
매직 알파 세트 원화 5점약 48만 3,600달러헤리티지 옥션즈(2020)
TCG 카드·원화 경매 최고가 사례

인쇄된 그림이 어떤 종이에 앉는지도 값을 가른다. 사진 쪽에서는 그 차이를 인화지로 따진다.

폴리티카 인물 카드 「국회담을 넘는 우원식 의장」, 영향력 4 지지도 4
직접 만든 인물 카드 「국회담을 넘는 우원식 의장」. 일러스트는 Aarv Partel.
폴리티카 정치 행동 카드 「12.3 비상계엄 포고령 발표」
정치 행동 카드 「12.3 비상계엄 포고령 발표」. 사건을 한 장에 담으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폴리티카 카드 뒷면, KOREA DEMOCRACY 문양
카드 뒷면. 앞면이 무엇이든 뒷면은 하나여야 한다.

참고: Hypebeast 「Rare First-edition Pokémon Charizard Card Sells for $336K」, Bulbapedia 「Mitsuhiro Arita」

카드 한 장이 명화가 되는 데 필요한 건 물감이 아니라, 그 카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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