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와 이어폰

소니 워크맨 역사, 이어폰으로 걸으며 듣는다는 개념을 만든 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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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걷는 것. 지하철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산책하면서 나만의 음악을 듣는 것. 그런데 이 당연한 장면이 처음 생겨난 게 겨우 1979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시작에 소니 워크맨이 있었다.

이어폰 하나로 세상을 바꾼 발상

이야기는 소니 공동창업자 마사루 이부카가 장거리 비행에서도 오페라를 편하게 듣고 싶다고 말한 데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소니 엔지니어들은 기존 녹음기 ‘프레스맨’을 개조해 단 며칠 만에 시제품을 만들어냈고, 1979년 7월 1일 워크맨이 세상에 나왔다. 흥미로운 건 이 기기가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사운드어바웃, 스웨덴에서는 프리스타일, 영국에서는 스토어웨이로 불리다가, 결국 전 세계가 ‘워크맨’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 부르게 됐다.

사운드어바웃도 프리스타일도 스토어웨이도 다 밀리고 워크맨이 남았다. 문법이 어색한 이름이 이겼다는 게 재미있다. 결국 부르기 쉬운 쪽이 이긴다.

TPS-L2, 초기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정식 모델명은 ‘TPS-L2’, 소니 부사장 오가 노리오의 지휘 아래 완성된 시제품이었다. 당시 가격은 약 150달러로,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500달러에 육박하는 고가 제품이었던 탓에 초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던 탓에 판매는 지지부진했고, 소니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반전은 마케팅에서 나왔다. 소니는 도쿄 시내 공원과 거리에서 직원들이 직접 워크맨을 착용하고 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체험시켜주는 거리 시연 이벤트를 벌였고, 이 방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 진출은 이보다 늦은 1980년 6월이었다.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있다. 독일 발명가 안드레아스 파벨은 1972년 이미 ‘스테레오벨트’라는 유사한 개념의 휴대용 음향기기를 고안해 특허를 출원한 상태였고, 이를 두고 소니와 수십 년간 법적 분쟁을 벌이다 2003년에야 합의에 이르렀다. 녹음 기능을 갖춘 ‘TCS-300’ 같은 파생 모델도 이어지며 워크맨 라인업은 계속 확장됐고, 카세트테이프부터 CD, 미니디스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맷으로 이름을 이어갔다. 그 결과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은 약 4억 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이후 등장한 플레이스테이션 전체 판매량을 뛰어넘는 수치다.

워크맨이 한창일 때 내 전용은 없었다. 값이 만만치 않아서 사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고, 누나가 쓰다가 손을 뗀 걸 내 것인 양 들고 다녔다. 남이 쓰던 물건이라는 게 그때는 조금 걸렸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절 워크맨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집 안에서 손을 옮겨 다녔던 것 같다.

먼저 생각한 사람과 팔아낸 사람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이 시리즈에서 자꾸 반복된다.

거리에서 직접 보여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설명으로는 전달이 안 되는 물건이었으니까. 지금은 그 장면이 너무 흔해서 시연할 것 자체가 없다.

걸으며 듣는다는 개념 자체가 발명품이었다

워크맨 이전에도 휴대용 라디오나 카세트 플레이어는 있었다. 하지만 이어폰을 꽂고 개인적으로, 걸으면서 음악에 몰입한다는 경험 자체는 워크맨이 처음 만든 것이었다. 이 작은 기기가 음악을 ‘함께 듣는 것’에서 ‘혼자 온전히 몰입하는 것’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사람들은 워크맨 하나로 자기만의 사운드트랙 속에서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게 됐고, 이 감각은 이후 CD플레이어, M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그리고 지금의 스마트폰 이어폰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출시 초기에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모습이 낯설고 심지어 무례해 보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 판매가 시작되자 이런 우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어폰 너머의 세상과 단절된 채로도 얼마든지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이 반응이야말로 워크맨이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하나의 생활 방식을 제안한 제품이었다는 증거였다.

지금 다시 워크맨을 찾는 사람들

  • 미국: 사운드어바웃(Soundabout)
  • 스웨덴: 프리스타일(Freestyle)
  • 영국: 스토어웨이(Stowaway)
  • 이후 전 세계 공통: 워크맨(Walkman)

이름이 나라마다 제각각이었던 건 소니 해외 지사들이 “워크맨”이라는 조어가 영어 문법상 어색하다고 판단해 각자 다른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결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워크맨이라는 이름이 굳어지자, 소니도 198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명칭을 워크맨으로 통일했다.

최근 중고 거래 플랫폼이나 빈티지 전자기기 매장에서는 오리지널 카세트 워크맨을 찾는 수요가 꾸준히 있다. 완전히 복원된 개체는 상당한 웃돈이 붙기도 한다. 성능이나 편의성 때문이 아니라,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되감기 버튼을 누르던 그 물리적 조작감, 그리고 그 시절 개인 음악 감상이라는 개념이 처음 태어난 순간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중고로 워크맨을 구할 때 확인해야 할 부분도 있다. 벨트가 늘어져 재생 속도가 불안정하지 않은지, 헤드폰 잭 접촉이 불량하지 않은지, 배터리 칸에 부식이 없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초기 모델일수록 부품 수급이 어렵기 때문에, 완전히 복원된 상태로 파는 판매자보다 직접 작동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편이 안전하다. 일부 수집가들은 당시 광고 카탈로그나 오리지널 박스까지 함께 갖추려 하는데, 이런 부속품이 딸린 개체는 단순 기기 이상의 값어치로 거래되기도 한다.

몇 해 전 중고로 들인 카세트 워크맨을 아직 갖고 있다. 재생 버튼을 누를 때 ‘철컥’ 하고 헤드가 올라오는 저항감, 테이프가 감기기 시작할 때의 미세한 모터 소리 — 스마트폰 재생 버튼에는 없는 이 물리적인 한 박자가, 이 물건을 아직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워크맨은 이후로도 계속 진화했다. 카세트 모델을 시작으로 CD 워크맨, MD 워크맨을 거쳐 지금은 브랜드 이름만 남긴 채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매체는 계속 바뀌었지만 ‘개인이 이동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듣는다’는 워크맨의 근본 아이디어는 형태를 바꿔가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국내에서도 워크맨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필수품처럼 여겨졌다. 등하굣길에 이어폰을 나눠 끼고 같은 노래를 함께 듣던 기억,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 소리가 늘어지면 연필로 릴을 감아 고치던 기억은 그 세대 대부분이 공유하는 장면이다.

지금 우리가 이어폰을 꽂고 무심코 거리를 걷는 그 모든 순간은, 1979년 여름 어느 날 태어난 작은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워크맨 45년, 매체가 바뀐 순서

연도제품매체
1979TPS-L2 (카세트 워크맨)카세트테이프
1984D-50 (CD 워크맨, 일명 디스크맨)CD
1992MD 워크맨미니디스크
1999네트워크 워크맨(메모리스틱)ATRAC 압축파일
2004네트워크 워크맨 신모델MP3 지원 추가
2010일본 내 카세트 워크맨 생산 종료
워크맨 매체 변천사(1979~2010)

흥미로운 건 워크맨이 카세트에서 CD, 미니디스크, 메모리스틱으로 매체를 갈아탈 때마다 매번 “이제 워크맨은 끝났다”는 회의론이 따라붙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소니는 매번 새 매체에 워크맨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얹었고, 브랜드가 특정 기술이 아니라 “개인이 이동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듣는다”는 경험 자체를 상징하게 됐다. 다만 2004년에 가서야 MP3 재생을 지원하기 시작한 건, 소니가 자체 압축 포맷인 ATRAC을 고수하다 시장 표준이던 MP3에 뒤늦게 대응한 사례로도 꼽힌다. 이 지연은 이후 애플 아이팟이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앞서 나가는 배경 중 하나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참고: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Sony TPS-L2 Walkman」, Wikipedia 「Walkman」

관련해서 바이닐 르네상스: LP판과 턴테이블이 다시 인기인 이유 편도 함께 보면 이해가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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