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 한쪽을 통째로 차지하던 가구가 있었다. 문을 열면 턴테이블이 나왔고, 옆 칸에는 라디오와 앰프, 스피커가 나무 장 속에 숨어 있었다. 전축이다. 오디오이면서 동시에 가구였던,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금 이상한 물건이다.
요즘 다시 전축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빈티지 가구점, 중고 거래 플랫폼, 인테리어 계정 할 것 없이 콘솔형 오디오 가구 사진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그런데 정작 전축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왜 그렇게까지 갖고 싶어 했던 물건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축은 단순한 오디오 기기가 아니라, 한 시대의 거실 풍경 그 자체였다.
전축, 가구이자 오디오였던 그 시절
전축의 정식 명칭은 전기축음기다. 턴테이블과 앰프, 스피커, 대개는 라디오 수신부까지 하나의 목재 캐비닛 안에 몰아넣은 일체형 오디오 가구를 가리킨다. 미국에서는 이런 형태를 콘솔 스테레오(console stereo)라고 불렀는데,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거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포마이카나 원목으로 마감한 장 안에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를 심고, 위쪽 뚜껑을 열면 레코드판을 올릴 수 있는 구조였다.
기술이 아니라 가구로 접근했다는 점이 지금 봐도 흥미롭다. 프렌치 프로방스풍, 덴마크 모던풍으로 겉모습을 꾸민 콘솔 스테레오가 나왔을 정도니, 당시 사람들에게 전축은 소리를 듣는 장치이기 이전에 거실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던 셈이다.
프렌치 프로방스풍 오디오라는 말은 지금 들으면 좀 웃긴다. 그런데 소리는 들어봐야 알고 장은 들여놓기 전에 눈으로 판단되니, 겉을 먼저 판 게 틀린 전략은 아니었다.
별표전축과 곗돈 1위의 로망
한국에서 전축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1960~70년대다. 그 중심에 있던 이름이 별표전축이다. 1957년 종로에서 정봉운이라는 인물이 세운 천일사가 만든 국산 전축 브랜드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라디오를 해체해 부품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별표전축은 1970년대 곗돈을 타면 가장 사고 싶은 물건 1위로 꼽힐 만큼 인기가 높았다. 1976년 광고 기준 가격은 현찰가 16만6500원, 할부가 18만5000원 수준이었고, 1977년 최고급 모델은 30만 원을 넘겼다. 당시 과장급 공무원 월급이 11만 원대였다고 하니,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훨씬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부잣집 안방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통했고, 한때는 국내 오디오 시장 점유율 1위, 종업원 1,50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기도 했다.
물론 화려한 시절이 영원하지는 않았다. 1978년 창업주의 탈세 혐의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1980년대 들어 브랜드명도 바뀌면서 별표전축이라는 이름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됐다. 잘나가던 물건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싶다.
전기축음기에서 전축까지, 100년의 발자취
사실 한국에 소리를 재생하는 기계가 처음 들어온 것은 훨씬 이전이다. 1899년 3월, 《황성신문》에는 유성기 판매 관련 기사가 실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보다 앞선 1880년에는 프랑스 신부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신기한 기계를 선보였는데, 평양감사가 “귀신의 소리”라며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축음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1935년 무렵에는 전국에 30만 대 이상이 보급되며 중류 가정에까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정을 통해 LP판이 소개됐고, 6·25전쟁을 거치며 미군 부대의 물자를 통해 더 널리 퍼졌다. 유성기에서 축음기로, 축음기에서 전축으로.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거실 한가운데서 음악을 틀어주는 존재라는 역할만은 그대로 이어졌다.
평양감사가 귀신의 소리라고 했다는 이야기에는 과장이 섞였겠지만, 처음 듣는 사람에게 그렇게 들렸으리라는 건 짐작이 간다.
요즘 다시 전축을 찾는 사람들
- LP와 턴테이블이 먼저 돌아왔다. 그 뿌리 격인 일체형 전축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흐름이다.
- 번거로움 자체가 경험이 된다. 스트리밍 앱을 몇 번 터치하는 것과, 나무 장 뚜껑을 열고 판에 바늘을 얹는 것은 다른 일이다.
- 소리와 가구를 한 몸에 지닌 물건이 지금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피커 따로, 턴테이블 따로 사는 게 당연해진 시대라 오히려 낯설다.
전축과 턴테이블은 닮은 듯 다르다. 턴테이블은 LP판을 재생하는 기기 하나에 집중하지만, 전축은 턴테이블에 앰프와 스피커, 라디오까지 얹은 올인원 가구다. 바이닐 르네상스: LP판과 턴테이블이 다시 인기인 이유에서 다뤘듯, 요즘 젊은 세대가 LP판을 사는 이유는 번거로움 그 자체가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축은 그 번거로움에 한 겹, 가구를 들이는 부담까지 더해진 물건인 셈이다.
불편해서 좋다는 말은 어느 선까지만 맞다고 본다. 바늘을 얹는 동작이 좋은 거지 바늘이 닳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전축이 턴테이블보다 문턱이 높은 이유도 거기 있다. 가구를 들이는 순간부터는 취향이 아니라 공간 문제가 된다.
전축을 들일 때 생각해볼 것들
막상 빈티지 전축을 들이겠다고 마음먹으면 고려할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진공관이나 벨트 같은 소모품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수십 년 된 기계인 만큼 부품이 삭았을 가능성이 높고, 수리가 가능한 기술자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크기도 무시할 수 없다. 콘솔형이라는 이름 그대로 웬만한 소파만큼 자리를 차지하니, 요즘 원룸이나 소형 아파트에는 애초에 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전축을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리와 가구, 두 가지 역할을 한 몸에 지닌 물건은 지금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피커 따로, 턴테이블 따로, 앰프 따로 사는 게 당연해진 시대에 전축은 여전히 낯설고,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콘솔형 전축과 컴포넌트 오디오, 무엇이 다른가
이런 형태의 가구를 영미권에서는 ‘라디오그램(radiogram)’이라 불렀다. 라디오 수신기와 축음기(턴테이블)를 하나의 목재 캐비닛에 함께 넣은 결합형 가전으로, 1950~60년대 거실 가구의 상징이었다.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을 따로 사서 연결하는 지금의 ‘컴포넌트 오디오’ 방식과는 태생부터 다른 발상이다.
| 구분 | 콘솔형 전축(라디오그램) | 컴포넌트 오디오 |
|---|---|---|
| 구성 | 스피커·앰프·턴테이블이 한 캐비닛에 일체형 | 기기별로 개별 구매해 조합 |
| 설치 공간 | 소파 크기의 대형 가구 하나 | 기기별로 분산 배치 가능 |
| 수리·부품 교체 | 일체형이라 부분 교체가 까다로움 | 고장 난 기기만 개별 교체 가능 |
| 인테리어 역할 | 가구 자체로 기능, 거실의 중심 | 기기별로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음 |
참고: Wikipedia 「Radiogram (device)」, The Henry Ford 「RCA Television-Radio-Phonograph Combination Console」
거실 한가운데서, 음악과 가구가 한 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 Sugarcaddy,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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