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 역사 100년, 레밍턴부터 공병우 세벌식까지

타자기 역사 100년, 레밍턴부터 공병우 세벌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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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딱, 딱.”
쇠막대가 종이를 때리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화면도 없고 되돌리기 버튼도 없다. 손끝에 실은 힘 그대로 잉크가 되어 종이에 박힌다. 이게 타자기다. 타자기는 지우개 없이 쓰는 도구다. 한 번 찍으면 그걸로 끝, 오타조차 문장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스마트폰 자판 하나로 문장을 완성하는 시대에, 요즘 다시 타자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개는 고개를 갸웃한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굳이 책상 위에 올려두는 이유가 뭘까. 그 답을 찾으려면 이 기계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되짚어야 한다.

타자기는 어떻게 태어났나

쓸 만한 타자기가 처음 등장한 건 1868년이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숄스와 동료들이 실용적인 타자기를 발명했고, 6년 뒤인 1874년 레밍턴사(E. Remington and Sons)가 이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며 세상에 널리 퍼뜨렸다. 이때 채택된 자판 배열이 지금 우리가 쓰는 QWERTY다. 150년도 더 된 자판 순서를,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도 그대로 누르고 있는 셈이다.

초기 타자기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느리고 무겁고 시끄러웠다. 그런데도 손으로 눌러쓰던 편지와 문서를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사무실 풍경 자체가 바뀌었다. 타자기 소리가 곧 “일하고 있다”는 증거였던 시절이 있었다.

타자기를 두고 불편한 물건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이 기계가 불편한 게 아니라 정직한 거라고 생각한다. 누른 만큼만 찍히고, 틀리면 남는다. 지우개가 없다는 게 이 물건의 성격이다.

타자기를 대표하는 얼굴들 — 올리베티와 스미스코로나

레밍턴이 문을 연 뒤, 여러 브랜드가 저마다의 타자기로 이름을 남겼다. 이탈리아의 올리베티가 1950년 무렵 내놓은 ‘레테라 22’는 산업 디자이너 마르첼로 니촐리가 설계했는데, 1959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이 “지난 100년간 가장 잘 설계된 제품”으로 꼽을 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레너드 코헨, 존 디디온 같은 작가들이 이 타자기로 원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스미스코로나가 오랫동안 타자기 시장을 대표했다. 1886년 설립된 이 회사는 1955년 전동 타자기를, 1957년에는 휴대용 전동 타자기를 내놓았는데, 이 휴대용 모델은 이후 수십 년간 미국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리포트를 쓰던 세대에게 타자기는 곧 학업의 동반자였다.

타자기를 실제로 써본 사람이라면 안다. 캐리지를 오른쪽 끝까지 밀고 나면 ‘땡’ 하는 종소리가 울리고, 손으로 레버를 당겨야 다음 줄로 넘어간다. 리본에 잉크가 마르면 그날 타이핑은 그걸로 끝이다. 이 모든 번거로움이 오히려 문장을 신중하게 만든다. 자동 완성도, 맞춤법 검사도 없는 자리에서 쓰는 사람은 온전히 혼자서 판단해야 한다.

한글이 타자기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서양 타자기가 한국에 들어온 뒤에도 한동안 한글은 타자기 안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초성, 중성, 종성이 위아래로 쌓이는 한글의 모아쓰기 구조는 옆으로 나열되는 로마자 자판과는 근본이 달랐기 때문이다. 1914년 이원익이 한글 타자기의 시초로 알려진 기계를 선보였고, 1933년에는 송기주가 초성 1벌·중성 1벌·종성 2벌, 이른바 4벌식 구조로 한글 모아쓰기를 구현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로 꼽히는 물건이다.

진짜 전환점은 1949년, 공병우의 세벌식 타자기였다. 초성·중성·종성을 세 벌의 글쇠로 나눠 빠르게 입력할 수 있게 설계했고, 앞서 시도됐던 다섯벌식·네벌식이 줄줄이 실패한 자리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방식이었다. 안과 의사였던 그가 한글 기계화에 매달린 이유는 정확히 설명되지 않지만, 환자를 돌보던 손으로 자판을 설계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한 편의 이야기다. 세벌식은 이후 초기 컴퓨터 한글 자판 논쟁에서도 오래도록 이름이 오르내렸다.

공병우 세벌식 이야기를 찾아볼 때마다 걸리는 게 있다. 한글을 기계에 넣는 문제를 푼 사람이 안과 의사였다는 것. 그 시절에는 필요한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타자기 소리가 사라진 자리

전성기를 지난 타자기는 1980년대 들어 휴대용 워드프로세서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화면에서 문장을 고치고 나서야 종이에 인쇄하는 방식은, 한 번 찍으면 되돌릴 수 없는 타자기의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편리함이, 지우지 못해서 신중해야 했던 시대를 밀어냈다. 2014년 무렵에는 타자기를 새로 생산하는 업체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기록도 있다.

사무실에서, 관공서에서, 문인의 책상에서 타자기가 하나둘 사라지는 동안 그 자리는 조용해졌다. 딱딱거리던 소리 대신 키보드의 낮은 클릭음이 들어섰고, 그마저도 지금은 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 소리로 바뀌어 가고 있다.

다시 타자기를 찾는 사람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오히려 타자기를 일부러 찾아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되돌릴 수 없어서 신중하게 눌러야 하는 방식, 화면 알림이 끼어들 틈 없이 오직 종이와 손가락만 남는 감각을 찾는 이들이다. 우리가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이유에서 다뤘듯, 완벽하게 지우고 고칠 수 있는 도구보다 오히려 실수까지 남기는 도구에 끌리는 흐름은 필름카메라나 LP판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타자기 역시 그 흐름 위에 있다.

타자기 앞에 앉으면 문장을 다듬는 방식부터 달라진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다 정리한 뒤에야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고, 오타 하나까지 그 순간의 흔적으로 남는다. 고칠 수 없어서 오히려 더 솔직해지는 글쓰기, 그게 지금 사람들이 타자기에서 다시 찾는 감각이다. 빨리 쓰면 빨리 잊히고, 천천히 눌러 쓰면 오래 남는다.

타자기를 하나 구해 책상 위에 올려두는 사람들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어떤 이는 진짜 원고를 쓰는 도구로 다시 쓴다.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하나다. 느려서 오히려 좋다는 것.

쇠막대가 종이를 때리던 소리는 한번 사라졌다가도 이렇게 다시 돌아온다. 지우지 못해서 남는 문장도 있다는 걸, 화면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딱, 딱, 딱 — 지울 수 없어서, 오히려 정직한 문장.

참고: Wikipedia 「Typewriter」, 위키백과 「공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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