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계획서를 쓸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이거였다. “정치인 이름을 그대로 카드에 넣으면, 고소당하지 않나요?”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준비하고 나면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이 따라왔다. “그거 미국 판례 얘기 아니야?” 폴리티카의 카드 두 장은 이 두 질문에 각각 답한다. 한 장은 한국 형법이 정한 안전판을, 다른 한 장은 그 안전판을 떠받치는 국내 이론의 근거를 담았다.
이미 팔리고 있는 대통령 얼굴 카드
미국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기념품숍에 가면 5.95달러짜리 카드 한 벌을 살 수 있다. 조커 두 장을 포함한 54장짜리 트럼프 카드에, 역대 미국 대통령 44명의 얼굴과 역사적 데이터, 백악관 사진이 인쇄돼 있다. 상품명은 “더 프레지던츠 플레잉 카드(The Presidents Playing Cards)”다. 트루먼 도서관뿐 아니라 여러 대통령 기념관과 화이트하우스 기프트샵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판매한다. 즉, 실존 정치인, 그것도 국가 최고 지도자였던 인물들의 얼굴을 카드에 인쇄해 파는 행위 자체는 미국에서 이미 반세기 가까이 존재해온 상품군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정치인을 카드로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우려는 상당 부분 풀린다.
명예훼손 형법 310조라는 안전판
한국 형법 310조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더라도 “그 사실이 진실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정한다. 여기에 더해 온라인 콘텐츠라면 정보통신망법도 함께 검토 대상이 된다. 대법원 판례들을 보면 공직자나 정치인처럼 공적 인물, 그리고 공적 관심사에 대한 발언에는 사인(私人)에 대한 발언보다 더 넓은 면책 범위를 인정해온 경향이 있다. 다만 이건 “정치인이니까 뭐든 말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진실성과 공익성이라는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전제가 여전히 붙는다. 이 고민은 폴리티카를 처음 구상하던 순간부터 이어졌다. 다만 이 글은 그 흐름을 짚어보는 글일 뿐, 법률 자문을 대신하는 글은 아니다. 실제 콘텐츠를 만들기 전에는 반드시 변호사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연예인 카드보다 정치인 카드가 역설적으로 안전한 이유
여기서 역설이 하나 생긴다. 얼핏 생각하면 연예인이 더 만만해 보이고 정치인은 건드리기 무서운 소재 같다. 그런데 법리상으로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연예인은 사생활 영역이 넓게 보호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정치인은 직무와 관련된 공적 발언이라면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지위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카드게임이 다루는 소재가 그 인물의 사생활 뒷담화가 아니라, 실제 정책이나 공개된 정치적 행보라면 이 원칙과 맞닿는 지점이 생긴다. 물론 이 원칙이 자동으로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다. 풍자와 비방의 경계, 사실과 의견의 경계는 사건마다 법원이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이다. 회사 안에서도 카드 문구 하나를 두고 몇 시간씩 토론이 벌어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저작권과 퍼블리시티권 사이
트럼프 카드처럼 규칙이 정해진 카드 게임 자체(숫자와 무늬, 게임 규칙)는 저작권 보호 범위가 제한적으로 해석된다. 반면 실존 인물의 초상을 이용하거나 그 이미지를 왜곡·희화화하는 것은 법적으로 다르게 취급될 소지가 있다. 특히 생존 인물의 경우 사후 인물보다 퍼블리시티권 관련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논의되는 편이다. 미국 온라인 마켓 엣시(Etsy)에는 “프레지던트 트레이딩 카드”라는 검색어로 다양한 대통령 카드 상품이 꾸준히 올라온다. 스포츠 트레이딩 카드 업계도 비슷한 선례가 있는데, 이 업계는 선수 개인과 별도 라이선스 계약(선수 노조 단체 협약 등)을 맺는 방식으로 퍼블리시티권 문제를 관리해왔다. 정치인은 이런 별도 노조나 표준 계약 체계가 없다는 점이 스포츠 카드 업계와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이다. 그만큼 사안별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
역사 저널리즘과 캐릭터화 사이의 경계
이 경계선은 폴리티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미 역사적으로 공식 기록되고 널리 알려진 공적 인물, 예컨대 전직 대통령이나 국가가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인물을 실명으로 다루는 건 역사 저널리즘의 영역에 가깝다. 신문이 대통령의 이름과 얼굴을 싣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오히려 그 반대편이다. 아직 공직에 있거나 정치 활동이 현재 진행형인 인물, 혹은 사업 파트너나 지인처럼 공적 인물이 아닌 개인을 실명으로 캐릭터화하는 경우다. 이런 인물은 처음부터 실명을 쓰지 않고 직함이나 역할로만 표현하는 게 원칙적으로 안전한 접근이다.
한국에도 있는 공인 이론
미국 연방대법원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 같은 공적 인물 이론을 한국에 그대로 갖다 붙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도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다루는 판례 이론과 학계 연구가 오랫동안 축적돼왔다. 국내 법학 학술지에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 그 민형사상 면책 구조에 관한 판례 이론의 분석” 같은 논문이 실려 있다. 이런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공직자·정치인처럼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에 대해서는, 일반 사인에 비해 명예훼손 성립 기준이 더 엄격하게(즉 발언자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를 정리해왔다. 미국의 공인 이론을 그대로 수입한 게 아니라, 한국 판례가 축적해온 흐름을 국내 학자들이 독자적으로 체계화해온 셈이다. 앞서 다룬 형법 310조가 개별 사건에 적용되는 조문이라면, 공인 이론은 그 조문을 어떤 인물에게 어떻게 적용할지 정하는 상위의 틀에 가깝다.
공인이라도 지켜지는 영역
이 이론도 무한정 적용되지는 않는다. 공인이라 해도 직무와 무관한 순수한 사생활 영역은 여전히 두텁게 보호받고, “공인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발언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결국 카드 한 장을 만들 때 계속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같다. 이 내용이 그 사람의 직무와 관련된 공적 관심사인가, 아니면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가. 선거에 출마하고 공약을 내걸며 표를 구하는 정치인은 그 직무의 성격상 가장 폭넓은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는 쪽에 가깝다. 유권자 앞에 나서기로 선택한 그 순간부터 평가와 비판을 감수하는 것도 함께 선택한 셈이라는 논리다. 폴리티카가 주로 다루는 소재가 선출직 정치인의 공개된 정치적 행보라는 점은, 이 논의의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점에 서 있다.
형법 310조와 설리번 판결은 어디서 갈리나
| 구분 | 한국 | 미국 |
|---|---|---|
| 핵심 근거 | 형법 310조(위법성 조각) + 공인 이론 |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1964) |
| 면책 요건 | 진실성 + 공익성 | 발언자의 “현실적 악의” 부존재 |
| 적용 대상 | 공직자·정치인 등 공적 인물 | 공무원(이후 공적 인물 전반으로 확장) |
| 공통점 | 공적 인물에 대한 발언은 사인에 대한 발언보다 넓게 보호 | |
해외 사례를 조사하다 보면 미국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이 자주 언급된다.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현실적 악의”가 입증되지 않는 한 폭넓게 면책된다는,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다. 하지만 한국의 형법 310조와 미국의 ‘현실적 악의’ 원칙은 요건과 구조가 다른 별개의 법리다. 진실성과 공익성이라는 두 축을 요구하는 한국 형법과, 발언자의 악의 여부를 핵심으로 보는 미국 판례를 그대로 등치시키는 건 정확하지 않다. 다만 두 나라 모두 “공적 인물에 대한 발언은 사인에 대한 발언보다 넓게 보호한다”는 방향성만큼은 공유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참고하는 건 미국 판례가 아니라 국내 판례와 국내 형법 조문이다. 국내에서 발행하고 국내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라면, 적용받는 법도 국내법이기 때문이다.
실무에서 지키는 세 가지 원칙
원칙을 안다고 실무가 저절로 쉬워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 팀은 카드 텍스트를 쓸 때 몇 가지 기준을 스스로 정해두고 있다. 첫째,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추측성 서술은 쓰지 않는다. 공개된 발언, 공개된 표결 기록, 공개된 정책처럼 이미 사실로 확정된 것만 다룬다. 둘째, 조롱보다는 풍자를 지향한다. 인신공격성 표현과 정치적 풍자 사이의 경계는 모호할 수 있지만, 최소한 그 경계를 의식하고 쓰는 것과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은 결과물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셋째, 애매한 표현은 법률 자문을 거친다. 이 원칙들이 소송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무모한 콘텐츠를 걸러내는 역할은 한다.
이론과 실무 사이의 거리
공인 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치 소재 콘텐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최소한의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그 이론이 실제 재판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는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달려 있다. 학술 논문과 판례가 그리는 큰 그림과, 우리 카드 한 장이 처할 수 있는 구체적 상황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메우는 건 결국 매번의 법률 검토와 신중한 표현 선택뿐이다. 논문 한 편을 읽었다고 그 검토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막연히 “정치 풍자는 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실제로 조문과 판례를 찾아보고서야 진실성과 공익성이라는 두 조건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따져지는지를 알게 됐다. 알고 나니 오히려 카드 문구를 쓸 때 더 조심스러워졌다.
카드 두 장에 나눠 담은 법적 질문
결국 법이 준 것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조건부의 여유다. 진실하고, 공익적이고, 인신공격이 아닌 선에서라면 정치는 오히려 다루기 나쁘지 않은 소재일 수 있다. 다만 그 조건을 매번 확인하는 일은 법조문이 아니라 결국 만드는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폴리티카의 카드 두 장 중 하나는 이 조건부의 여유를, 다른 하나는 그 여유가 어디서 왔는지를 담았다. 근거를 안다고 판단이 저절로 쉬워지지는 않는다. 다만 최소한, 아무 방어선도 없이 카드를 만드는 것과 방어선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법이 열어준 문은 자유가 아니라, 매번 다시 확인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에는 이미 반세기 가까운 근거가 쌓여 있었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문제는 게임 밖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다. 김구와 안중근을 AI로 되살린 전시가 그렇다.

이 글은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법률 자문을 대신하지 않는다. 실제 콘텐츠 제작 전에는 반드시 변호사의 개별 검토를 받아야 한다. 참고: 위키백과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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