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에서 배운 커뮤니티의 힘,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남긴 것

전통시장에서 배운 커뮤니티의 힘,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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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원래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데 사람이 모인다고 저절로 살아나는 건 아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현장을 몇 년 드나들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상권을 살리는 건 예산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었다.

‘문전성시’라는 이름의 실험

2000년대 중후반 전국 곳곳의 전통시장에서 진행된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단순히 아케이드를 씌우거나 간판을 바꾸는 시설 개선이 아니라 상인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시장의 콘텐츠를 기획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인회가 그저 이름뿐인 조직이 아니라, 실제로 축제를 기획하고 손님을 끌 아이디어를 내는 주체가 되는 것. 지원금이 사업의 시작이 될 수는 있어도, 지속시키는 건 결국 상인들 스스로 만든 관계망이었다. 수원 못골시장이 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로 만난 사이가 관계가 될 때

이전 글에서 짧게 언급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 못골시장을 자주 드나들며 상인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상인들과 마주쳤다. 처음엔 지원사업을 실행하기 위한 업무적 만남이었다. 그런데 시장통에서 반나절씩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그 관계는 업무를 넘어선 것이 되어 있었다. 상권이 살아나는 건 손님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먼저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 체감했다. 상인 한 명 한 명이 자기 가게만 챙기던 시장에서, 옆집 상인의 사정까지 신경 쓰는 시장으로 바뀌는 그 과정 자체가 활성화였다.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활성화된다

소상공인 상권 활성화 정책을 보면 시설 현대화, 주차장 확충, 온누리상품권 같은 물리적·재정적 지원이 주로 언급된다. 다 필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오래 살아남은 시장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상인 조직이 단단하다는 이야기가 되풀이해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뮤니티가 긍정적으로 결집하면, 그 결집 자체가 다시 사람을 끌어들이는 콘텐츠가 된다. 축제 하나, 이벤트 하나가 성공하는 것도 결국 그걸 함께 만들 사람들이 이미 서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원금이 아니라 사람을 조직한다는 접근

당시 문전성시 사업의 실행 방식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었다. 시설 개선 예산을 먼저 집행하기보다,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먼저 열어 ‘우리 시장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상인들 스스로 정의하게 만드는 절차를 앞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돈을 먼저 쓰기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먼저 모으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이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상인들이 자기 손으로 기획한 축제와 캠페인은 지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자체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시설 개선만 하고 조직화 과정을 생략한 시장은 예산이 끊기는 순간 활력도 함께 꺼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폴리티카가 오프라인 대회를 고집하는 이유

폴리티카를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오프라인 카드게임으로 설계하면서 자꾸 그 시장통 풍경이 떠올랐다. 화면 안에서 만나는 관계와, 얼굴을 맞대고 카드를 내려놓으며 만드는 관계는 다르다. 대회에서 만난 사람이 다음 대회에서 다시 마주치고, 서로의 덱을 기억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다시 자리를 함께하는 것 — 이게 시장 상인회가 만들어냈던 그 결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는 플랫폼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얼굴을 마주친 사람들이 스스로 쌓아 올리는 것이다. 못골시장에서 배운 그 감각을, 폴리티카의 오프라인 대회 전략에 그대로 옮겨오고 싶다.

축제 하나가 만드는 파급력

못골시장은 이후 지역 대표 전통시장 관광 코스로도 소개될 만큼 꾸준히 사람이 찾는 시장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소규모 행사와 캠페인이 반복되면서, 그날그날 물건을 사러 온 손님과 시장을 구경하러 온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거창한 랜드마크 하나가 시장을 살린 게 아니라, 작은 행사가 꾸준히 쌓이면서 ‘가볼 만한 곳’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이런 축적은 단기간에 흉내낼 수 없다. 상인들이 몇 년에 걸쳐 같은 자리를 지키며 손님과 관계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폴리티카의 오프라인 대회도 결국 이런 축적을 목표로 한다 — 한 번의 큰 이벤트보다, 작더라도 반복되는 자리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만드는 것.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시장통에서 배운 건 마케팅 이론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원칙이었다. 사람을 먼저 알아야 그 사람이 사는 공간도 살릴 수 있다는 것. 사업계획서를 잘 쓰는 것보다, 상인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사정을 기억하는 게 더 오래가는 자산이었다. 정책은 예산이 끊기면 사라지지만,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는 그 뒤에도 남는다. 폴리티카 커뮤니티를 설계할 때도 이 순서를 뒤집지 않으려 한다. 상인 한 명이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서 인사를 건네는 것, 그 작은 반복이 쌓여야 손님도 다시 찾아온다.

시설 개선형과 조직화형, 표로 비교하면

구분시설 개선 중심문전성시(조직화 중심)
초기 투입아케이드·간판 등 시설 예산상인 대상 교육·워크숍
주체지자체·시공사상인회 자체 조직
지원 종료 후활력 저하 사례 다수자체 축제·캠페인 지속 사례 다수
대표 사례–수원 못골시장(2008년 선정)
전통시장 활성화 접근 방식 비교

현장에서 남긴 사진과 메모가 나중에 유일한 근거가 되는 일은 흔하다. 기록한다는 게 무슨 일인지는 따로 적어뒀다.

참고: 문화체육관광부 「’08년 문전성시 프로젝트 수원 못골시장·강릉 주문진시장 선정」, 주간경향 「전통시장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시장을 살린 건 정책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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