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왜곡 없이 기록한다는 것, 아카이빙이라는 감각

역사를 왜곡 없이 기록한다는 것, 아카이빙이라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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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저절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 남기기로 결정해야 남는다. 아카이빙이라는 단어를 처음 진지하게 생각한 건 폴리티카의 카드 한 장 한 장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정치사적 사건을 카드 한 장으로 압축한다는 건, 결국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일이었다.

사실 이 단어를 먼저 만난 건 학교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카이빙을 처음 마주한 건 폴리티카가 아니었다. 2001년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조경학군으로 들어갔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통조경을 택했다.

전통건축 쪽은 양식과 건축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전통조경은 생태와 환경이 건축물과 함께 얽혀 나타나는 종합예술처럼 보였다. 담장 안쪽만 보는 게 아니라 담장이 어디에 놓였고 그 뒤로 무엇이 심겼는지까지 보는 일. 스무 살에 그렇게 정리된 말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끌렸던 이유는 대체로 그쪽이었다.

그래서 답사가 잦았다. 문화재 앞에 서면 결국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지금 이것의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전체를 찍을 것인가 이음새를 찍을 것인가, 남기지 않기로 한 것은 왜 남기지 않는가. 기록은 저절로 남지 않는다는 문장을 나는 카드가 아니라 답사에서 먼저 배웠다.

학교 다음은 현장이었다

졸업하고는 정식 문화재 보수업체에서 일했다. 그중 한 현장이 명동예술극장이었고, 나는 그 현장의 관리를 맡았다. 현장 소장 자리다.

이 건물은 1936년에 명치좌라는 이름의 극장으로 지어졌다. 해방 뒤에는 시공관으로 불렸고, 1957년부터는 국립극장으로 쓰였다. 1973년에 국립극장이 옮겨간 뒤로는 오래 금융기관 사무실이었다가 2009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름과 용도가 몇 번씩 바뀌는 동안에도 외벽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나 짚어둘 게 있다. 이 건물은 국가나 시가 지정한 문화재가 아니다. 서울시가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관리하는 서울미래유산(지정번호 2013-092)이다. 그런데도 외벽 공사는 문화재를 다루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정 등급이 다루는 방식을 정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을 남길지는 목록이 아니라 현장에서 정해진다.

내가 맡은 공사는 그 외벽이었다. 오래된 타일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서 떼어내고 다시 붙이는 일이었다.

명동예술극장 외벽 비계 위에서 타일면을 작업하는 모습
외벽 타일면 작업. 건물 사이가 좁아 비계를 세우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떼어낸 타일을 버리지 않는다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이야기다. 떼어낸 타일은 함부로 관리하지 않는다. 어느 자리에 붙어 있던 것인지, 어떤 상태로 떼어냈는지를 모두 사진으로 남기고 정밀하게 보관한다. 그리고 다듬어서 원래 있던 그 위치에 다시 붙인다.

떼어낸 외벽 타일을 천 위에 모아두고 한 장씩 다듬는 작업 현장
떼어낸 타일을 천 위에 모아두고 한 장씩 다듬는다. 버리려고 모아둔 게 아니다.

사진 속 저 무더기가 전부 되돌아갈 물건이다. 한 장 한 장 뒷면을 정리해야 하니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 새 타일로 갈면 훨씬 빠르고 싸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새것으로 바꾸는 순간 그건 다른 건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게 기록이다. 어디에 무엇이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가 사진으로 남아 있어야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 기록이 먼저 있고 복원은 그 위에 선다. 아카이빙이 관념이 아니라 공정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가장 위험했던 건 안전장치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 현장에서 제일 어려웠던 건 타일이 아니라 비계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아주 좁았다. 그 틈에 비계를 세워야 하는데, 양쪽 다 다치면 안 되는 건물이었다. 우리 건물도 옆 건물도 긁히거나 눌리면 안 된다.

비계는 작업자를 지키려고 세우는 안전장치다. 그런데 그 안전장치를 세우는 과정이 그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이었다.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올렸던 기억이 있다. 보존이라는 일에는 이런 역설이 자주 붙는다. 남기기 위해 건드려야 하고, 안전하게 하려고 위험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구전에서 문서로, 문서에서 디지털로

인간이 기억을 남기는 방식은 계속 바뀌어왔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매번 조금씩 달라졌고, 문자가 등장하면서 기록은 비로소 고정된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 아카이빙의 시대다. 디지털 자원의 장기 보존은 단순히 파일을 저장해두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무결성을 유지하면서 기술적 변화와 손상 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 작업으로 정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장 매체는 계속 바뀌고, 파일 포맷은 언젠가 낡은 것이 된다. 아카이빙은 그 변화 속에서도 원본이 원본으로 남게 만드는 일이다.

저장 매체가 낡는다는 건 겪어봐서 안다. 플로피와 CD-R에 나눠 넣어둔 것들 중에 지금 열리는 게 거의 없다. 남겼다고 생각한 것과 실제로 남은 것은 다른 이야기다.

출처를 지키는 일이 왜 중요한가

기록관리학에는 ‘출처주의’라는 원칙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시기, 같은 사람이나 기관에서 생산된 기록은 원래 만들어진 맥락과 순서를 유지한 채로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기록 하나를 원래 있던 자리에서 떼어내 다른 맥락에 끼워 넣으면, 그 순간부터 기록은 조금씩 왜곡되기 시작한다. 왜곡 없는 기록이란 결국 사실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이 태어난 맥락까지 함께 지키는 일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다 — 인상적인 한 장면만 떼어와 과장하면, 그건 기록이 아니라 재구성된 이야기가 된다.

인상적인 한 장면만 떼어오고 싶은 유혹은 카드를 만들 때 제일 자주 온다.

카드 한 장이 최소단위가 될 수 있을까

폴리티카는 정치사적 순간 하나를 카드 한 장으로 최소단위화해서 담아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게 정식 아카이브학의 방법론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떤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면 반드시 ‘이 사건에서 무엇이 핵심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카드 설계와 기록물 정리가 같은 종류의 고민을 공유한다. 사료가 되는 문서와 통계, 당시 보도를 확인하고, 그중 무엇을 카드의 텍스트와 수치로 남길지 고르는 과정은 사실 압축이 아니라 선별이다. 무엇을 버리느냐가 무엇을 남기느냐보다 더 어려운 결정일 때가 많았다.

보존과 접근은 다른 문제다

아카이빙에서 자주 간과되는 지점이 하나 있다. 기록을 잘 보존하는 것과, 그 기록을 나중에 누군가 실제로 찾아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무결하게 보존된 자료라도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록관리학에서는 목록화와 분류 체계를 보존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 수장고에만 갇힌 기록과,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게 정리된 기록은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가진다. 폴리티카의 카드에 발행 연도와 사료 출처를 함께 표기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카드 한 장이 그 자체로 하나의 색인이 되어, 나중에 누군가 그 사건을 더 깊이 찾아보고 싶을 때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잊혀지지 않게 만드는 감각

폴리티카를 처음 구상하던 순간부터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 있었다. 지나고 보면 역사의 한 단면인데,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그냥 잊혀지고 만다는 것. 아카이빙이라는 개념을 알기 전부터, 사실 나는 계속 아카이빙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사업계획서에 담았던 수많은 사료들, 상인회장님과 나눴던 대화들, 캠프에서 밤새 고쳤던 시안들 — 이 모든 게 어딘가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기억 속에서도 흐릿해졌을 것이다. 기록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누군가가 다시 꺼내볼 수 있게 준비해두는 일이다. 카드 한 장에 정치사의 한 순간을 담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이름이 바뀌면 기록의 틀도 바뀐다

아카이빙의 원칙이 시대에 따라 계속 조정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에도 있었다. 2024년, ‘문화재’라는 명칭이 ‘국가유산’으로 바뀌고 국가유산청이 출범했다. 재화적 성격이 강했던 기존의 ‘문화재’ 개념에서,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을 아우르는 체계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 하나를 바꾸는 데 그친 게 아니라, 무엇을 보존 대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관점 자체가 넓어진 셈이다. 아카이빙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들 때 정한 분류 체계가 영원히 맞는 게 아니라, 시대가 달라지면 그 틀도 다시 정비해야 한다. 폴리티카가 다루는 정치사적 사건들도, 지금은 카드 뒷면의 짧은 설명으로 충분해 보여도 나중에는 더 정교한 분류와 맥락이 필요해질 수 있다. 기록은 한 번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손을 봐야 하는 살아있는 작업이다.

결국 아카이빙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거창한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시작은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다. 사료가 된 문서 하나, 인터뷰 녹취 하나를 버리지 않고 어딘가에 정리해두는 것부터가 아카이빙의 첫걸음이다. 거창한 데이터베이스보다, 지금 눈앞의 기록 하나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태도가 먼저다. 폴리티카의 카드 뒷면에 짧게라도 사료를 남기려는 것도 그 작은 습관의 연장선이다.

기록관리학이 지키는 원칙 네 가지

원칙의미
출처주의(Provenance)같은 생산 주체의 기록은 다른 출처와 섞지 않는다
원질서 존중기록이 원래 생산·관리되던 순서를 유지한다
무결성 보존저장 매체·포맷이 바뀌어도 내용을 원본 그대로 지킨다
접근성(findability)목록화·분류로 나중에 실제로 찾아 쓸 수 있게 한다
기록관리학의 핵심 원칙 4가지

기록을 남기는 쪽과 기록을 다투는 쪽은 늘 붙어 있다. 언론중재법이 만든 선이 그 다툼의 최근 형태다. 최후의 순간까지 남았던 시민군이나 무너지기 전 여덟 시간의 삼풍백화점은, 누군가 적어두지 않았다면 지금 확인할 방법이 없었을 일이다.

참고: Society of American Archivists 「Principle of Provenance」, SAA 「Statement of Principles」

기록되지 않은 순간은, 있었던 적이 없는 것과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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