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월 26일 저녁, 전남도청 2층에 외신기자들이 모였다. 마이크 앞에 선 건 5·18 시민군 지도부의 대변인 윤상원이었다. 그는 다음 날 새벽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리를 지켰고, 세계를 향해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외신기자 회견을 자청하다
계엄군의 재진입이 임박했다는 건 도청 안에 있던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시민군 대변인은 외신기자들 앞에 서는 쪽을 택했다. 국내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통로는 외신이 거의 유일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우리는 오늘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이 말은 그날 밤 자신에게 닥칠 일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사람의 발언이었다.
국내 언론이 막혀 있을 때 외신을 택했다는 건, 그날의 승패가 아니라 나중에 읽힐 기록 쪽을 택했다는 뜻이다. 카드로 옮기면서 이 선택이 제일 오래 남았다.
남을 사람만 남기다
그날 밤,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 지도부는 결정을 내렸다. 여성과 학생들을 먼저 귀가시키고, 도청에는 남기를 원하는 사람만 남기기로 한 것이다. 이건 전투 대형을 갖추는 결정이 아니라, 계엄군의 재진입이 임박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이었다. 싸울 사람과 살아야 할 사람을 나누는 그 결정에는, 자신들이 어떤 결과를 맞을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담겨 있었다. 남기로 한 이들 중에는 이미 처자식이 있는 사람도,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청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싸울 사람과 살아야 할 사람을 나누는 결정은 이길 생각이 없을 때만 나온다. 이 대목에서 그 밤의 성격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5월 27일 새벽
27일 새벽 3시경,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광주 곳곳에서는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다는 다급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새벽 4시경 계엄군은 도청을 향해 진격했다. 교전은 한 시간 남짓으로 끝났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도청에 남기로 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시민군 대변인도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다 세상을 떠났다. 이 사실을 전하는 이유는 그 순간을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왜 그 자리에 남는 쪽을 택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답은 아마 전날 밤 외신기자들 앞에서 그가 했던 말 안에 이미 담겨 있었을 것이다.
무엇을 남겼는가
그가 남긴 건 결국 두 가지 선택이었다. 세계에 사실을 알리는 것, 그리고 남을 사람과 보낼 사람을 나누는 것. 둘 다 자기 목숨을 계산에 넣고 내린 판단이었다.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은, 아마 그가 남긴 그 한마디에 가장 가깝게 담겨 있을 것이다 —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말. 그 말은 승리를 약속하는 말이 아니라, 기억되는 쪽이 결국 이긴다는 걸 알고 있었던 사람의 말에 가까웠다. 그날 그가 지키려 했던 건 승리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이었다.
열흘의 항쟁, 그 마지막
5월 18일부터 열흘 가까이 이어진 광주의 항쟁은, 시민들이 스스로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며 계엄군에 맞섰던 드문 사례로 기록된다. 도청은 그 열흘 동안 시민 자치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27일 새벽은 그 열흘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고, 동시에 그 열흘이 무엇을 남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도청에 남기로 한 사람들의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저항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열흘간 지켜온 자치와 연대를 어떻게 기억으로 넘길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기억하는 사람들
5·18 민주화운동은 이후 오랫동안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의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사람들의 이름과 사연이 하나씩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을 기록하는 일은 승패를 다시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잊지 않으려는 일에 가깝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광주에서는 그날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리고, 그 자리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인다. 5·18 관련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개인의 기억으로 남아 있던 일이, 이제는 국제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폴리티카가 이 이야기를 다루는 이유
정치를 소재로 카드게임을 만들면서, 이런 이야기를 가볍게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5·18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각자의 기억과 상실로 남아 있는 사건이다. 이 시리즈에서 하려는 건 그 무게를 줄이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순간들이 지금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지 짚어보는 일이다. 폴리티카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정치 카드게임 폴리티카(PolitiCA)의 시작에 담겨 있다.
그날 새벽, 도청에 남기로 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기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 뒤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복해서 인용되고 있다.
마지막 열흘, 날짜별로
| 날짜 | 사건 |
|---|---|
| 1980-05-18 | 계엄군 투입, 광주 시민 항쟁 시작 |
| 1980-05-21~26 | 시민군 자치 치안·질서 유지, 전남도청 거점화 |
| 1980-05-26 저녁 | 윤상원, 외신기자 회견 자청 |
| 1980-05-27 새벽 | 계엄군 재진입, 도청 항전 종료 |
| 2011 |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
참고: 5·18기념재단 「5·18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패배해도 영원히 패배하지 않는다 — 그 말은 그날 새벽 이후 46년이 지나도록 사실로 남아 있다.
사진: Jjw,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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