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쿠터를 산 날 바로 전국일주를 떠났다. 가게에서 나와 짐을 싣고 그대로 출발해서 7박 8일을 돌았다. 더 이상한 건 그날이 스쿠터를 처음 몰아본 날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누가 그러겠다고 하면 말릴 텐데, 그때는 그게 이상한 일인 줄 몰랐다.
전역하고, 충무로에서
군대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모아둔 돈을 꺼냈다. 먼저 스쿠터를 산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를 따라 충무로 어딘가의 가게로 갔다. 125cc짜리 클래식 스쿠터였다. 대만에서 만든 카피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걸어 다니는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였으니까.
빈티지를 다루다 보면 진품이냐 아니냐로 값이 갈리는 장면을 자주 본다. 그런데 스무 몇 살의 나한테 그 스쿠터는 원본이든 카피든 아무 차이가 없었다. 그 물건이 나에게 준 건 브랜드가 아니라 반경이었다.
빠르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대신
스쿠터의 단점은 분명하다. 빠르지 않고, 위험하다. 고속도로는 들어갈 수도 없다. 대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 기준으로는 초라한 성능이지만, 두 발로 걷던 사람 기준으로는 세상이 통째로 넓어지는 변화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기타를 한 대 등에 매고 그냥 달렸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없으니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여행의 대부분이 됐다.
고속도로에 못 들어간다는 조건이 여행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이륜차는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에 들어갈 수 없다. 배기량과 상관없이 그렇다. 그러니 스쿠터로 어딘가에 가겠다고 마음먹으면 선택지가 하나뿐이다. 국도로만 간다.
제약처럼 들리지만 겪어보면 반대다. 고속도로는 지역을 통과하는 길이고 국도는 지역을 지나가는 길이다. 국도에는 읍내가 있고 시장이 있고 정류장이 있다. 표지판에 적힌 지명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다. 빨리 가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으니 느리게 가는 것에 대해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 스쿠터는 나를 어디로 데려다준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이동할지를 정해준 물건이었다. 목적지를 안 정한 것도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애초에 빨리 도착하는 게 불가능한 탈것이었으니까.
서해안을 따라 광양까지, 2박 3일
제일 멀리 간 건 서울에서 광양이었다. 한 번에 내리 달린 게 아니라 서해안을 따라 2박 3일에 걸쳐 갔다. 스쿠터로 갈 수 있는 속도가 그 정도이기도 했고,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느리게 가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 차로 지나가면 창밖 풍경이 흘러가지만, 스쿠터에서는 냄새가 바뀌는 게 먼저 느껴진다. 갯벌 근처를 지날 때와 논 사이를 지날 때가 다르고, 해가 기울면 공기 온도가 손등에 먼저 닿는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세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느리고 느긋하게, 보고 싶은 것을 다 보면서 갔다.
숙소를 미리 잡지도 않았다. 해가 지면 그 근처에서 잤고 다음 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등에 맨 기타는 사실 거의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컸다. 짐이 하나 더 있다는 건 돌아갈 이유가 하나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날 앉아 있던 바위가 뭔지는 한참 뒤에 알았다
그때 찍은 사진 중에 층층이 갈라진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게 한 장 있다. 오래 잊고 있다가 다시 보니 채석강이었던 것 같다. 전북 부안 격포리,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길목이다.
그 바위가 그렇게 생긴 건 백악기 퇴적층이 층층이 쌓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얇은 결이 수평으로 포개져 있어서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지금은 적벽강과 함께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웃긴 건 내 전공이 전통조경이었다는 점이다. 문화재 앞에 서는 일이라면 학교에서 지겹도록 했다. 그런데 그날은 답사가 아니었다. 조사할 항목도 없었고 사진으로 남겨야 할 부재도 없었다. 그냥 지나가다 앉기 좋아 보여서 앉은 것이었다.
같은 자리인데 과제로 가면 대상이 되고 지나가다 앉으면 그냥 앉을 자리가 된다. 그 차이를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그 사진이 남아서 안다. 오래된 것을 다루는 일은 그 뒤로 직업이 되기도 했지만, 제일 좋았던 순간은 그것을 다루지 않고 있을 때였다.
겨울에는 30분마다 엔진에 손을 댔다
한겨울에 스쿠터를 타면 제일 힘든 게 뭔지 아는가. 손이다. 아무리 두꺼운 장갑을 껴도 맞바람을 계속 맞으면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진다. 몸통은 껴입으면 되는데 손은 방법이 없다. 브레이크와 스로틀을 잡고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30분에서 40분에 한 번씩 멈춰 섰다. 세워두고 뜨겁게 달궈진 엔진에 장갑 낀 손을 잠깐 대고 있으면 감각이 돌아온다. 그러면 또 달릴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방법인데, 그때는 그게 유일하게 아는 방법이었다.
겨울에 스쿠터를 타는 사람은 대체로 겨울에 타고 싶어서 타는 게 아니다. 그게 유일한 이동수단이라서 탄다.
홍천 국도에서 끝났다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비발디파크 발권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중이었고, 석 달짜리 일이었다.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국도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래서 편하게 유턴하려고 반대편 차선 쪽으로 붙였는데, 중앙선 근처에 골이 깊게 파여 있었다. 그대로 미끄러졌다. 길바닥에는 살얼음이 얇게 깔려 있었다. 수십 미터를 밀려 나갔던 것 같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이 그 스쿠터를 폐차한 날이 됐다. 산 날에 전국일주를 떠난 물건이 겨울 국도에서 끝난 셈이다.
지금 길에서 그 물건을 보면
요즘도 길에서 클래식 스쿠터를 보면 눈이 따라간다. 한때 사랑했던 물건이고 추억이 통째로 얹혀 있는 물건이다. 그 시절에 내가 갈 수 있었던 거리는 전부 저 물건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아들이 타겠다고 하면 나는 반대할 것이다. 이게 모순인 걸 안다. 홍천에서 미끄러지던 그 몇 초를 겪어봤으니 반대하는 것이고, 그 몇 초까지 포함해서 좋은 기억이니까 눈이 따라가는 것이다. 오래된 물건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대개 이런 모순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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