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실 옥상 펜스에 티셔츠 한 장이 한 달째 걸려 있다. 67,000원을 주고 산 러시(Rush)의 「Test for Echo」 투어 티셔츠다. 입으려고 산 게 아니라 얼마나 빨리 낡게 만들 수 있는지 보려고 샀다.
이 블로그에서 크랙과 페이딩으로 빈티지 티셔츠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지를 자료로 따져본 적이 있다. 인공 크랙을 내는 잉크가 여러 나라에서 팔리고 있었고, 결론은 흔적만으로는 연대를 판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료로는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

실험 조건
조건이랄 것도 없이 단순하다. 옥상 펜스에 걸어두고 하루 두 번쯤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비 오는 날은 뿌리지 않는다. 중간에는 소금을 탄 물도 뿌려봤다. 앞뒤로 계속 돌려가며 걸어서 한쪽만 타지 않게 했다.
통제된 실험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자외선 세기도 기온도 그날그날 다르고, 소금물은 도중에 추가한 변수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하게 얻었다. 한 달이면 눈에 띄게 바랜다는 것이다.
일주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
첫 주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 눈에도 그대로였다. 그러다 일주일을 넘기면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빠르게 진행됐다.
처음 일주일이 조용했다는 게 오히려 중요해 보인다. 며칠 만에 티가 나는 방법이었다면 누구나 하고 있을 것이다. 한 달은 짧지 않지만 40년보다는 압도적으로 짧다.
같은 옷 안에서 색이 갈렸다
제일 놀란 건 뒤집어봤을 때다. 겉면은 검정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갈색이 됐는데 안쪽 면은 처음 그대로 새까맣다. 밑단처럼 접혀 있는 자리도 마찬가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자외선은 빛이 닿는 면만 때린다. 앞뒤를 돌려가며 걸었으니 겉면은 앞뒤 모두 바랬고, 안쪽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계속 안쪽이었다. 그래서 이 옷에는 색의 경계선이 생겼다.
이건 실용적인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탁으로 빠진 색은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물과 세제는 원단 전체를 통과하니까. 반면 햇빛으로 바랜 옷은 겉과 안의 색차가 남는다. 매대에서 옷 한 장을 뒤집어보는 것만으로 그 옷이 어떤 방식으로 낡았는지를 짐작할 여지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봉제실은 검다
어깨 솔기를 보면 이야기가 한 겹 더 있다. 원단은 갈색으로 넘어갔는데 박음질한 실은 여전히 검다. 이 실은 원단과 나란히 햇빛을 받았다. 노출 차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재질이다. 티셔츠 몸판은 면이고 봉제사는 대개 합성섬유다. 섬유가 다르면 쓰는 염료가 다르고, 염료가 다르면 빛을 버티는 시간이 다르다. 앞선 글에서 정리한 대로 색이 아니라 염료가 버티는 시간을 정한다. 그 문장을 옥상에서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태그를 보다가 멈췄다
낡히는 데만 신경 쓰다가 뒤늦게 목 태그를 봤다. FRUIT OF THE LOOM · HEAVY cotton · XL · 100% COTTON PRESHRUNK · MADE IN CANADA.

프루트 오브 더 룸은 이 블로그에서 태그를 근거로 연대를 좁히는 이야기를 할 때 다룬 회사다. 그때 SEC 공시로 확인한 것이 하나 있다. 이 회사는 1995년 초까지만 해도 해외 봉제 비중이 10%대였는데, 1997년까지 3년에 걸쳐 봉제·마감 공정을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로 옮겼고 1998년에는 해외 봉제가 95%를 넘었다.
그러니 「MADE IN CANADA」라는 북미 표기는 그 이동 이전 쪽을 가리킨다. Test for Echo 투어가 1996년에서 1997년 사이였다는 점과 어긋나지 않는다. 나는 이 셔츠를 리프린트가 아니라 오리지널로 알고 샀다. 태그는 그 설명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실험의 성격이 바뀐다. 없던 세월을 지어내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낡은 물건을 더 낡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 된다. 그리고 빈티지 시장에서 값을 올리려고 하는 일이 대체로 후자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있는 것을 과장하는 쪽이 훨씬 쉽고 티도 안 난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아깝다. 30년 가까이 검정으로 버틴 옷을 내가 한 달 만에 갈색으로 만들었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아까움까지 포함해서 이 실험이 답하려던 질문 안에 있다. 낡음이 값이 되는 시장에서, 낡게 만드는 일은 훼손인가 가공인가.
그래서 무엇을 알게 됐나
첫째, 한 달이면 눈에 띄게 바랜다. 세월이 필요한 흔적이라는 말은 최소한 색에 관해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 다만 바랜 방식은 흔적을 남긴다. 겉과 안의 색차, 봉제실과 원단의 색차. 어떻게 낡았는지는 여전히 읽을 수 있다.
셋째, 그래서 앞선 글의 결론은 유지된다. 페이딩 하나로 연대를 판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옷이 태양 아래 있었는지 세탁기 안에 있었는지 정도는 뒤집어보면 알 수 있다. 판정은 못 해도 질문은 좁혀진다.
아직 한 달 더 남았다
목표는 최대한 허옇게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한 달쯤 더 걸어둘 생각이다. 두 달이 되면 색의 경계가 더 뚜렷해질지, 아니면 안쪽까지 넘어갈지 궁금하다. 안쪽까지 바랜다면 위에 적은 감별 이야기는 기한이 있다는 뜻이 된다.
결과는 이 글에 이어서 적을 생각이다. 빈티지 티셔츠 만들기라고 부르기엔 허술한 실험이지만, 적어도 남의 자료가 아니라 내 옥상에서 나온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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