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여기까지만 읽고 다음 구절이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면, 당신은 VHS 세대다.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밀어 넣으면 본편보다 먼저 나오던 그 경고문. 대여점에서 빌려 온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수백 번을 봤으니, 외우려 하지 않아도 외워졌다. 스트리밍 버튼 하나로 영화가 시작되는 지금, 그 강제 대기 시간부터가 이미 하나의 유물이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 — 경고문의 정체
전문은 이렇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호환(虎患)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화, 마마는 천연두를 높여 부르던 말이다. 1980~90년대 배급사들이 불법 복제를 막으려고 본편 앞에 붙인 경고 영상인데, “복제하면 원본 테이프가 손상된다”는 사실과 다른 엄포까지 함께 돌았다. 불법 비디오를 겁주려던 문구가 정작 그 세대 전체의 공유 기억이 됐다는 것이 이 경고문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그 경고문은 건너뛸 수가 없었다. 빨리감기를 눌러도 안 넘어가서 화면을 보며 기다리는 시간이 영화의 일부처럼 붙어 있었다. 광고 5초 뒤에 건너뛰기를 누르는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기다림이었다.
VHS는 어떻게 이겼나 — 1976년 JVC HR-3300
그 경고문이 실리던 매체의 역사는 법정에서 시작됐다. 소니의 베타맥스가 1975년 미국 가정에 들어가자, 1976년 10월 25일 유니버설과 디즈니가 “가정 녹화는 저작권 침해”라며 소니를 제소했다. 소송은 8년을 끌어 1984년 1월 연방대법원이 5 대 4로 소니의 손을 들어줬다 — 가정용 녹화기라는 물건의 합법성이 딱 한 표 차이로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할리우드가 소니를 법정에 세운 지 엿새 뒤, 태평양 건너에서 진짜 승부수가 나왔다. 1976년 10월 31일 일본에서 발매된 세계 최초의 VHS 녹화기 JVC HR-3300이다. 이 기계는 베타맥스 초기 모델의 두 배인 2시간 녹화를 지원했고, JVC는 소니와 달리 규격을 다른 제조사에 개방해 누구든 VHS 기기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영화 한 편이 통째로 들어가는 테이프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규격 — 포맷 전쟁의 승패는 화질이 아니라 이 두 가지가 갈랐다.
한 표 차이였다는 게 서늘하다. 반대로 갔으면 집에서 방송을 녹화하는 일 자체가 불법이 됐을 텐데, 그랬다면 동네 비디오방도 없었을 것이다.
블록버스터, 19개에서 9,094개까지
VHS의 승리를 완성한 곳은 대여점 매대였다. 1985년 10월 19일 텍사스 댈러스에 문을 연 블록버스터 1호점의 재고부터 VHS 8,000개에 베타 2,000개로 기울어 있었다 — 대여점이 어느 쪽 테이프를 채우느냐가 곧 포맷 전쟁의 전황판이었다. 1987년 19개이던 블록버스터 매장은 1988년 약 400개로 불어나며 미국 1위 체인이 됐고, 뉴욕타임스가 1988년 5월 ‘비디오 가게의 비좁은 틈’이라는 기사에서 집계한 바로는 당시 미국의 비디오 전문점만 약 2만 5천 곳, 겸업 매장까지 합치면 4만 5천 곳이 넘었다. 동네 슈퍼마켓이 편당 49센트에 비디오를 빌려주던 시절이다. 블록버스터는 2004년 전 세계 매장 9,094개, 직원 8만 4,300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10년 파산했고, 지금은 오리건주 벤드에 마지막 한 곳이 남아 관광지가 됐다. 한 업종의 탄생부터 소멸까지가 한 회사의 연혁 안에 다 들어 있다.
전국 4만 개 — 한국 비디오 대여점의 흥망
한국의 곡선도 가파르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 전국 비디오 대여점은 4만 개를 넘어섰지만, 2006년에는 4천여 개까지 줄었다. 같은 기사가 짚은 쇠퇴 배경 중 하나가 2006년 기준 4,000억 원대로 추정된 온라인 불법 복제 시장이라는 점은 곱씹을 만하다 — 호환 마마 경고문이 그토록 겁내던 ‘불법 복제’가 결국 업종 전체를 데려간 셈이니까. 이 통계가 실린 지면이 2007년의 ‘창업의 정석’ 기사였다는 사실도 얄궂다. 업계가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이 업종의 창업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전성기의 대여점은 나름의 규칙으로 돌아갔다. 신작은 늘 대여 중이라 예약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고, 반납일을 넘기면 연체료와 주인의 눈총을 함께 받았다. 주인이 단골 취향을 기억해뒀다가 신작을 따로 빼놓아 주던 그 접촉은, 지금의 알고리즘 추천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음에 볼 영화’를 정해 줬다 — 동네 비디오 대여점 주인이 곧 그 동네의 영화 큐레이터였던 셈이다. 빌리러 가고, 기다리고, 반납하러 가는 그 번거로움이 영화 보는 날 하루를 작은 행사로 만들었다. 그렇게 빌려 온 테이프를 브라운관 TV 앞에 모여 보던 풍경까지가 한 세트였다 — 그 화면 이야기는 브라운관 TV는 왜 그리운가에서 따로 다뤘다.
신작이 늘 대여 중이라 예약 명단에 이름을 적던 게 기억난다.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보러 한 번 더 가야 했고, 기다리는 사이에 다른 걸 빌려 오는 일도 많았다. 보고 싶은 걸 며칠씩 못 보는 상태로 지내는 경험은 지금은 거의 없다.


2016년 마지막 VCR, 7만 5천 달러짜리 VHS
공식적인 마침표는 2016년에 찍혔다. 마지막까지 VCR을 만들던 일본 후나이전기가 그해 7월 생산 종료를 발표한 것이다. 1983년부터 VCR을 만들어 전성기에는 연 1,500만 대를 팔던 회사의 마지막 해 판매량은 75만 대였다. HR-3300이 나온 1976년부터 꼭 40년 — VHS라는 규격은 한 세대를 채우고 생산 라인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생산이 끝나자 수집 시장이 열렸다. 2022년 6월 미국 헤리티지 옥션이 연 첫 VHS 전문 경매에서 미개봉 ‘백 투 더 퓨처’ 테이프가 7만 5천 달러에 낙찰되며 밀봉 VHS 경매 사상 최고가를 세웠다 — 극 중 비프 역을 맡았던 배우 톰 윌슨의 소장품이었다.
| 작품 (판본) | 낙찰가 |
|---|---|
| 백 투 더 퓨처 (1986년판, 미개봉) | 75,000달러 |
| 구니스 (1986년판) | 50,000달러 |
| 죠스 (1983년판) | 32,500달러 |
| 고스트버스터즈 (1985년판) | 23,750달러 |
| 탑건 (1987년 다이어트펩시 프로모션판) | 17,500달러 |
전 세계에서 입찰자 598명이 몰린 이 경매는 VHS가 폐기물에서 수집품으로 신분을 바꿨다는 공식 선언이었다. 국내는 그 정도 광풍은 아니지만, 중고 장터에는 비디오테이프 매물이 상시로 올라오고 대여점용·희귀 테이프를 취급하는 전문 판매처도 영업 중이다. 소품샵에서는 낡은 비디오 케이스가 인테리어 소품으로 팔린다. 다시 찾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화질이 아니다 — 되감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던 시간, 화면에 지지직 섞여 나오던 노이즈의 질감이야말로 스트리밍이 복제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표지 그림만 보고 영화를 고르던 시절의 물성이, 이제는 그 자체로 상품이 된 것이다.
집에 남은 VHS 테이프를 살리는 법
다락에 남은 테이프가 있다면 지금이 옮길 때다. 자기테이프는 시간이 지날수록 열화되는데, 재생할 기계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다행히 공공 서비스가 있다 — 서울기록원은 VHS·6mm·8mm 영상과 오디오테이프 음성까지 무료로 디지털 변환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1인 최대 2개), 제주도 역시 2023년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도민 대상으로 1인 3개 이내, 선착순 700개의 변환 사업을 진행했다. 민간 변환 업체도 여럿 영업 중이다. 캠코더로 찍어 둔 가족 영상이라면 더 미룰 이유가 없다 — 캠코더를 산 건 일본에 못 갔기 때문이다에서 적었듯, 그 테이프들은 세상에 한 개뿐인 원본이다.
돌이켜보면 VHS의 흥망은 접근성의 역사였다. 영화를 처음으로 개인의 손에 쥐여 준 기술이, 더 쉬운 접근성 앞에서 자리를 내줬다. 그 사이 우리는 표지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던 시간, 반납 기한의 사소한 긴장, 테이프를 쥐고 집으로 걸어오던 설렘을 함께 반납했다. 호환도 마마도 끝내 오지 않았다.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 기다림이 사라진 자리에서, 영화 한 편의 무게도 함께 가벼워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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