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1학년, 좁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친구 둘이 마주 앉아 있었다. 카드를 이리저리 돌리고 서로의 생물카드를 노려보다가, 한쪽이 “마법을 썼다”며 소리를 지르면 다른 한쪽이 카드 한 장을 딱 내밀며 막아냈다고 좋아했다. 무슨 게임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 자리에 눌러앉아 구경했다. 그게 매직 더 개더링(MTG)과의 첫 만남이었다.
매직 더 개더링 한국 출시, 동아리에서 매장으로
시기가 시기였다. 매직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나온 카드게임인데, 한국에는 90년대 후반 서울대·카이스트 같은 몇몇 대학 동아리를 통해 먼저 흘러들어왔고, 1996년 국내 배급사 인터하비(당시 이름은 울트라라이트, 이후 환타지미디어를 거쳐 인터하비로 상호가 바뀌었다고 한다)를 통해 정식으로 발매됐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친구들 어깨너머로 처음 그 게임을 구경한 시점이 딱 이 무렵과 맞물린다. 이후 2011년부터는 코리아보드게임즈가 국내 판권을 넘겨받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하니,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카드는 한국 어딘가에서 계속 팔리고 있었던 셈이다.
TCG 카드 수집, 용돈을 아껴 바인더를 채우던 시절
구경만으로 끝날 리 없었다. 나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 카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바인더를 하나 사서 카드를 속성별로, 등급별로 분류해 꽂아두는 것부터가 이미 재미였다. 카드 한 장 한 장을 비닐 슬리브에 넣어 정리하는 그 손맛이, 지금 생각해도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방배동 지하에 있던 작은 TCG 매장에 자주 드나들었고, 거기서 열리는 로컬 토너먼트에서 우승도 몇 번 해봤다. 내가 짠 덱으로 상대의 덱을 무너뜨리는 재미도 컸지만, 솔직히 말하면 카드 안에 그려진 판타지풍 일러스트 쪽이 나를 더 오래 붙잡았다. 그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한국프로야구선수 카드와 나란히 놓고 보면 재질부터 차원이 달랐다. 얇고 흐물거리는 종이 한 장과, 코팅이 되어 손끝에서 빳빳하게 걸리는 카드 한 장. 그 차이 하나로 나는 뭔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취미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
매직 더 개더링 매출과 인기, 그때는 몰랐던 숫자들
그 시절엔 몰랐다. 지금 매직 더 개더링이 어느 정도 규모의 게임이 됐는지. 하스브로가 2026년 2월 발표한 2025년 4분기·연간 실적 자료에 따르면 매직은 한 해에만 17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회사가 직접 “역대 최고의 해”라고 표현한 실적이고, 하스브로 전체 연매출 47억 달러의 3분의 1 이상을 카드 게임 하나가 만들어낸 셈이다. 내가 중학생 때 우연히 발을 들였던 그 판은 지금 완전히 다른 체급의 산업이 되어 있다.
문구점 구석에서 부스터 한 팩을 뜯던 게 이 게임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같이 카드를 넘기던 사람들 중에 이 판이 회사 하나를 먹여 살리는 규모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지금 저 숫자를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한국 커뮤니티 쪽 사정은 조금 결이 다르다. 한때 해즈브로 코리아가 직접 운영하던 네이버 공식 카페도 2023년에 문을 닫았고, 지금은 온라인 커뮤니티 갤러리나 유튜브 채널 정도가 소식을 전하는 창구로 남아 있다. 화려한 매출 그래프와는 별개로, 국내 팬층은 여전히 소수의 마니아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챙기는 좁은 판이라는 인상이다.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 밀려 눈에 띄지 않을 뿐,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는 꽤나 활발하게 카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때 방배동 지하 매장에서 느꼈던 그 폐쇄적인 아늑함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매직 아레나 vs 실물 카드, 화면 속의 매직과 다시 손끝으로
세월이 흐르며 매직도 컴퓨터 안으로 들어왔다. 2002년에 나온 매직 더 개더링 온라인을 시작으로, 2009년부터는 듀얼 오브 더 플레인즈워커라는 이름으로 매년 콘솔과 PC판이 나왔고, 이후 매직 듀얼을 거쳐 2019년에는 지금의 매직 아레나로 이어졌다. 나도 이 버전들을 그때그때 꽤 즐겼다. 결제도 아낌없이 했던 것 같다. 화면 속에서 카드를 조합하고 상대와 겨루는 재미 자체는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느낌은 방배동 지하 매장에서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그 감각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화면 속 카드는 아무리 예쁘게 그려져 있어도 손끝에 닿지 않았고, 이겨도 바인더에 꽂을 게 없었다. 소장한다는 감각, 내 손으로 정리하고 쌓아 올린다는 감각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승부의 재미와 소유의 재미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라는 걸, 그때 화면을 붙잡고 있으면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깨달았다.
TCG 카드 한 장이 가진 무게
돌이켜보면 내가 그때 사랑했던 건 승부 자체가 아니라 카드라는 물건 그 자체였다. 손에 쥐었을 때의 무게, 빛에 비춰봤을 때의 광택, 바인더 속에 정리해 넣는 순서까지. 정보 한 조각을 이렇게 작은 사각형 안에 압축해서, 손으로 만지고 모으고 자랑할 수 있게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나에게는 마법 같았다. 그 시절 내가 열광했던 건 판타지 세계관이었지만, 지금 내가 폴리티카로 담으려는 건 우리가 실제로 통과한 사건들이다. 담는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카드 한 장에 무언가를 압축해서 남긴다”는 그 형식에 대한 애정만큼은 중학생 시절 그 좁은 책상 앞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시절 바인더를 채우던 손이, 지금은 전혀 다른 카드를 설계하고 있다.
사진: Alex Buell, Wikimedia Commons (CC BY-SA 2.5)
정치 카드게임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인 정치 카드게임 폴리티카(PolitiCA)의 시작도 함께 읽어보면 좋다.
그 바인더를 채우던 게임이 30년 뒤에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매직이 아직도 자체 세계관을 파는 이유에 적었다. 수집이 값으로 바뀌는 쪽 이야기라면 무료로 뿌린 포켓몬 카드가 60만 원이 되는 과정이 더 가깝다.
참고: Hasbro, Inc. 「Hasbro Reports Fourth Quarter and Full Year 2025 Financial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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