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청바지가 어떤 건지 알고 싶으면 그 앨범 커버를 보면 돼요.”
빈티지 데님을 다루는 글이 거의 예외 없이 이 말을 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in the U.S.A.』 뒷모습 사진 — 흰 티셔츠, 뒷주머니에 꽂힌 빨간 야구모자, 바랜 리바이스 501. 1984년에 나온 앨범이니 80년대 데님의 표준 이미지로 이보다 편한 사진이 없다.
그런데 리바이스가 그 바지를 실제로 꺼내 조사한 기록이 있다. 회사 아카이브는 빅 E 레드 탭과 셀비지 원단, 뒷주머니 리벳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이 옷을 텍사스 엘패소 공장의 1966~1971년 생산품으로 본다.
셋 다 처음 듣는 말일 테니 한 줄씩 풀어둔다. 빅 E는 뒷주머니에 달린 작은 붉은 천 조각, 이른바 레드 탭에 박힌 LEVI'S가 전부 대문자이던 시기의 표기다. 1971년에 마지막 글자가 소문자 e로 바뀌므로, 대문자 E는 그 이전을 가리킨다. 셀비지는 폭이 좁은 구식 직기로 짜서 원단 가장자리가 저절로 마감돼 풀리지 않는 변폭을 말한다. 리벳은 천이 힘을 받아 찢어지기 쉬운 자리에 박아 넣는 금속 못이다.
내부 세탁 라벨까지 없어 아카이브도 연도를 못 박지 않고 생산 구간으로만 말한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80년대를 한 장으로 요약한다는 그 사진 속 청바지는, 커버가 찍힌 시점에 이미 15년쯤 묵은 옷이었다.

어긋난 게 그 청바지 하나뿐이면 우연이다. 그런데 청바지를 낡게 만드는 공정도 똑같이 어긋난다. 그 공정은 1978년부터 미국 특허로 남아 있다.
그래서 80년대에 새로 등장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게 된다. 청바지도 아니고, 청바지를 낡게 만드는 공정도 아니었다. 낡음에 값을 치르는 시장이었다. 아래는 그 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특허와 광산 보고서와 국가기록원 문서로 따라간 이야기다.
여덟 줄만 보고 가셔도 된다
| 흔히 하는 말 | 확인한 자료 | 판정 |
|---|---|---|
| 커버 속 501은 80년대 제품 | 리바이스 아카이브 실물 조사 | 기각 — 아카이브는 1966~71년 엘패소 생산으로 추정 |
| 리바이스가 80년대 중반 셀비지를 버렸다 | 리바이스 공식 아카이브·501 연혁 | 성립 — 레드 셀비지 1927~1983년 |
| 여성용 501은 80년대에 처음 나왔다 | 리바이스 501 공식 연혁 | 성립 — 1981년 |
| 84년 올림픽 공식 의류가 리바이스였다 | 리바이스 공식 자료 | 성립 — LA 올림픽 |
| 스톤워시의 발명자는 특정할 수 있다 | 미국 특허·앨버타 왕립박물관 GWG 연표 | 판정 불가 — 주장 넷이 병존하고 문서는 어느 쪽도 뒷받침하지 않는다 |
| 애시드워시는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 미국 특허 US4740213A(출원인 Golden Trade SRL) | 부분 성립 — 1986년 이탈리아 법인의 미국 출원까지만 확인. 최초 발생지는 미확인 |
| 배틀 재킷은 바이커 패치 문화에서 왔다 | 해당 1차 자료 없음 | 미확인 — 시기 겹침 외 근거 없음 |
| 교복 자율화가 국내 청바지를 청소년의 옷으로 만들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바지」 | 부분 성립 — 백과가 연결을 명시하나 근거 자료는 달지 않았다 |
세어보면 성립 셋, 부분 성립 둘, 기각 하나, 판정 불가 하나, 미확인 하나다. 여덟 개를 자료에 대봤더니 그대로 통과한 것은 셋뿐이었다.
오른쪽 칸에서 눈여겨볼 것은 기각과 판정 불가가 다르다는 점이다. 앞의 것은 자료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는 뜻이고, 뒤의 것은 자료가 아직 아무 방향도 가리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글이 가장 조심한 구분이 그것이다.
여덟 줄 가운데 옷을 손에 들고 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셋뿐이다. 그 셋은 맨 끝 절에 따로 모아뒀으니 급하면 거기부터 봐도 된다.
발명자 이름이 넷인데, 문서는 어느 쪽도 받쳐주지 않는다
이 글은 스톤워시의 발명자를 지목하지 않는다. 지목할 수 없어서다. 스톤워시 기원을 다루는 글은 대개 한 사람을 딱 집는데, 집히는 사람이 글마다 다르다.
정리하면 이렇게 병존한다. 리바이스 쪽 서술은 훗날 자사가 인수한 캐나다 GWG의 도널드 프리랜드를 1950년대 고안자로 든다. 발명가 클로드 블랑키에는 1970년대에 자신이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일본 브랜드 에드윈은 80년대에 자사가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의 마리테+프랑수아 지르보는 발명자가 아니라 산업화한 쪽으로 자주 꼽힌다.
| 이름 | 주장 내용 | 문서가 있는가 |
|---|---|---|
| 도널드 프리랜드 (캐나다 GWG) | 1950년대에 고안했다 | 앨버타 왕립박물관 「Piece by Piece」 연표 — 1950년대 항목 자체가 없고, 1972년 Scrubbies와 1977년 마케팅 이사 취임을 잇지 않는다 |
| 클로드 블랑키에 | 1970년대에 자신이 개발했다 | 없다 — 본인 주장 |
| 에드윈 (일본) | 1980년대에 자사가 만들었다 | 없다 — 자사 발표 |
| 마리테+프랑수아 지르보 (프랑스) | 발명이 아니라 산업화 | 없다 — 그렇게 거론될 뿐 |
이름은 넷인데 확인 가능한 문서가 붙은 줄은 하나뿐이다.
넷 가운데 문서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GWG 건 하나뿐인데, 하필 그 문서가 리바이스 쪽 서술을 받쳐주지 않는다. 앨버타 왕립박물관이 운영하는 GWG 아카이브 「Piece by Piece」 연표는 1972년 항목에 “선세탁 청바지 Scrubbies 발명, 연간 200만 벌 생산”이라고 적어놓았고 — 선세탁은 공장에서 미리 빨아 부드럽게 만들어 내보낸다는 뜻이다 — 도널드 프리랜드는 1977년 마케팅 이사로 등장한다. 연표는 둘을 잇지 않고, 1950년대 항목 자체가 없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고 싶은 유혹이 있다. 연표에 없으니 프리랜드 설은 틀렸다고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쓰지 않았다. 자료가 없다는 것은 반증이 아니라 침묵이다. 주장이 넷이고 그중 문서를 볼 수 있는 하나가 침묵하는 상태를 “누가 발명했다”로 정리하는 것은 정리가 아니라 선택이다.
돌이 오기 전에 표백제가 먼저 있었다
낡음을 만드는 공정은 80년대보다 앞선다. 특허 세 건을 출원 순으로 놓으면 그 순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 특허 | 출원 | 무엇을 하는 공정인가 |
|---|---|---|
| US4218220A (BASF Wyandotte) | 1978년 | 표백제와 유연제로 씻는다. 돌이 없다 |
| US4740213A (Golden Trade SRL) | 1986년 | 차아염소산 적신 부석을 물 없이 굴린다 |
| US5006124A (FMC) | 1989년 | 과망간산칼륨으로 산화시킨 뒤 중화한다 |

첫 번째 특허의 제목은 그냥 「청바지를 바래게 하는 방법」이다. 새 옷인데 처음부터 색이 고르게 빠져 있는 청바지, 즉 선바램 청바지를 만드는 공정이 1978년에 이미 특허로 출원돼 있었다는 뜻이다. 여기엔 돌이 등장하지 않는다. 세제와 유화제로 씻고, 표백제와 4급 암모늄 유연제 — 가정용 섬유유연제에 흔히 쓰이는 그 성분이다 — 를 동시에 넣고, 헹구고, 마지막에 유연제로 마무리한다. 스톤워시가 유행하기 전에 이미 화학적 페이딩을 공정으로 특허화한 회사가 있었다. 그 공정이 실제로 얼마나 돌아갔는지는 이 특허만으로 알 수 없다.
두 번째가 애시드워시의 문서 근거다. 이탈리아 골든 트레이드가 프란체스코 리치 이름으로 낸 이 특허는 방법을 이렇게 요약한다. 바랠 원단을 차아염소산염 같은 화학 표백제에 적신 부석 알갱이와 건조 상태로 접촉시키고, 통상적인 공정 기계의 드럼을 정해진 시간 동안 돌린다. 차아염소산염은 가정용 표백제의 주성분이고, 부석은 속에 기포가 많아 물에 뜨는 가벼운 화산암이다. 물에 담그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돌이 닿은 자리에만 표백이 일어나 얼룩덜룩한 무늬가 남는다. 애시드워시 특유의 얼룩이 왜 생기는지가 이 한 줄로 끝난다.
여기서 원본 서술 하나를 고쳐야 했다. 애시드워시를 “부석을 표백제나 과망간산칼륨에 적셔 돌린다”고 설명하는 글이 많은데, 특허 원문은 차아염소산염을 든다. 보라색 산화제인 과망간산칼륨은 나중이다. 세 번째 특허가 1989년에 그 공정을 다루면서 화학적 산소요구량 — 배출된 물이 얼마나 오염됐는지 재는 지표다 — 을 줄이는 개선안으로 제출됐다.
그러니 순서는 이렇다. 화학 페이딩이 먼저(1978년 출원), 부석과 표백제를 결합한 애시드워시가 그다음(1986년 출원), 과망간산칼륨 공정의 환경 개선이 마지막(1989년 출원)이다.
한 해에 71퍼센트면 그건 종이가 아니라 공장이다
공정이 실제로 돌아갔다는 증거는 청바지가 아니라 화산암 쪽에 남아 있다. 뉴멕시코 광물자원국이 펴낸 조사 보고서 『Pumice and Pumicite in New Mexico』(Bulletin 140, 1994)는 부석 산업을 용도별로 추적하면서 이 시기를 이렇게 적었다. “1985년 무렵부터 깨끗한 덩어리 부석이 스톤워싱이라 불리는 공정에서 디자이너 진을 생산하는 데 연마재로 쓰이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진은 디자이너나 브랜드 이름을 앞세워 비싸게 팔던 청바지를 가리키는 당시 업계 표현이다. 그리고 규모를 숫자로 남겼다. “1986년에서 1987년 사이 연마재 용도의 부석 사용량이 71% 증가했는데, 주된 원인은 바랜 데님 원단을 만들려는 세탁 산업의 수요였다.”
한 해에 71%. 이 정도면 종이가 아니라 공장이다.

수요가 어디에 몰렸는지도 보고서에 적혀 있다. 세탁용 부석의 최대 시장은 로스앤젤레스와 텍사스 엘패소였고, “엘패소 한 곳에서만 1988년 한 달에 2,500톤이 넘는 덩어리 부석이 세탁 공장에서 소비됐다”고 썼다. 다만 같은 보고서 부록은 엘패소 세탁 공장의 소비량을 월 300만 파운드로 추산한다. 두 수치는 서로 맞지 않는다 — 2,500톤이면 550만 파운드다. 보고서 안에서 갈리는 숫자를 하나로 고를 근거는 없으니 자릿수만 취하는 게 정직하다. 어느 쪽을 잡아도 미국의 도시 하나가 청바지를 낡게 만들려고 한 달에 화산암 수천 톤을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애시드워시 수요가 정점이던 그해, 엘패소의 여러 세탁 공장은 하루 8시간 3교대로 돌아갔다.
여기서 이 원고의 지명 하나가 두 번 걸린다. 앞에서 본 스프링스틴의 501을 만든 곳이 엘패소 공장이었다. 1960년대 말 그 도시가 새 청바지를 꿰맸고, 1988년 그 도시가 새 청바지를 낡게 만들었다. 두 사실은 각각 문서로 확인되며, 둘을 인과로 잇는 자료는 없다. 다만 1970년대 엘패소의 청바지 공장에서 약 4만 명이 일했다는 보도가 남아 있으니, 그 도시가 미국 데님의 손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발명자가 넷인데 특허에는 아무도 없다. 이걸 확인하고 나서 나는 이 물건에 대한 기대를 좀 낮췄다. 누가 처음이었느냐를 따지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헛수고로 끝난다.
1981년 12월 뉴욕, 세 시간 만에 서른 벌이 팔렸다
공정이 상품이 되는 장면에는 날짜가 붙어 있다. 1981년 조르주와 모리스 마르시아노 형제가 로스앤젤레스에 옷 가게를 열었다. 그해 12월 조르주가 뉴욕으로 날아가 서툰 영어로 블루밍데일스를 설득해 위탁으로 서른 벌을 매대에 걸었다. 스톤워시로 부드럽고 색이 옅어진 원단, 몸에 붙는 핏, 발목 지퍼, 뒷주머니의 삼각형 로고. 60달러라는 가격표에도 세 시간 만에 다 팔렸다.
이 장면은 기업사 사전에 적힌 것이고 회사 공시로 되짚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세 시간이라는 숫자를 시장 규모로 읽으면 안 된다. 그건 뉴욕 백화점 한 곳에서 위탁 서른 벌이 팔린 속도일 뿐이다.
대신 이 숫자가 확실히 말해주는 것이 하나 있다. 낡아 보이게 가공한 60달러짜리 새 청바지를 그 자리에서 사는 손님이 1981년 12월 맨해튼에 있었다는 것이다. 부석 사용량이 71% 뛰기 5년 전이다. 손님이 먼저 있었고 공장이 따라갔다.
붉은 실선은 미학이 아니라 원단 폭 때문에 사라졌다
옆선의 붉은 실이 사라진 해는 1983년이고, 이유는 취향이 아니라 원단 폭이었다. 리바이스 501의 옆선 안쪽에 흰 테두리와 붉은 실 한 줄이 보이면 셀비지, 이른바 레드라인이다. 이게 언제 없어졌는지를 두고 원본 글들조차 1984년과 1985년으로 엇갈렸다.
리바이스 공식 아카이브의 서술은 이렇다. 1927년 콘 밀스가 501 전용으로 10온스 레드 셀비지 데님을 개발했고, 이 원단은 1983년까지 쓰였다. 그리고 “1984년 무렵 콘 밀스가 더 현대적이고 경제적인 와이드 룸을 도입해 원단 폭을 두 배로 늘렸고, 가운데를 잘라 쓸 수 있게 되면서 셀비지가 필요 없어졌다”고 적혀 있다. 와이드 룸은 말 그대로 폭이 넓은 직기다. 별도 문서인 501 연혁에는 1983년에 60인치 와이드 룸으로 XXX 데님을 짜기 시작했다고 나온다.
즉 원단 전환은 1983년에 시작돼 1984년쯤 굳어졌다. 이걸 “1984년에 셀비지를 중단했다”고 한 줄로 줄이면 대체로 맞지만, “1985년 이전 제품은 셀비지”라고 하면 틀린다. 그리고 전환의 이유는 미학이 아니었다. 좁은 원단을 넓은 원단으로 바꾸면 재단 손실이 줄고 시간당 생산량이 오른다. 수집가들이 연도의 증표로 떠받드는 붉은 실선은 그 계산의 부산물로 사라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태그 서체나 박음질 색으로 501의 연대를 연 단위까지 특정하는 대조표가 수집가 사이에 돈다. 리바이스가 공개한 자료에는 그런 표가 없다. 실물을 많이 본 사람들이 역산해 만든 지도이므로, 셀비지 유무처럼 문서로 뒷받침되는 단서와 같은 무게로 쓸 수 없다.
리바이스가 80년대에 판 것은 청바지가 아니라 1873년이었다
같은 시기 리바이스가 실제로 한 일들을 연도순으로 늘어놓으면 성격이 뚜렷해진다. 신제품이 아니라 서사다.
1981년, 여성용 501이 나왔다. 그 전에도 ‘레이디 리바이스’가 있었지만 이번 건은 달랐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새 여성용 501은 “1873년부터 남성 노동자들이 입어온 것과 똑같은 뻣뻣한 미세탁 데님”으로 만들었고 — 미세탁은 공장에서 한 번도 빨지 않아 처음엔 뻣뻣하고 입고 빨면서 줄어드는 상태다 — 광고는 이걸 “세탁하면 몸의 곡선에 맞춰 저절로 줄어드는 유일한 청바지”라고 팔았다. 광고 「Travis」는 1956년 영화 『자이언트』의 한 장면을 그대로 다시 찍었다. 카우보이가 모자를 벗자 긴 머리가 쏟아진다. 새 제품을 파는 광고가 1873년과 1956년을 동시에 불러온 셈이다.
1984년에는 두 가지가 동시에 시작됐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미국 대표팀 공식 아웃피터 계약 — 대표팀 옷을 대는 자리다 — 그리고 그 올림픽에서 첫 전파를 탄 「501 Blues」 TV 캠페인이다. 올림픽 재킷을 설계한 엘런 뒤노는 선수 요청을 반영해 가볍고 세탁이 쉬운 앞지퍼 재킷을 만들었고, “이긴 선수가 팔을 들어올릴 때 눈에 띄도록” 흰 줄무늬를 넣었다고 회사 자료에 남아 있다. 텔레비전 화면을 계산에 넣고 옷을 설계한 것이다.
그리고 1985년, 리바이스는 1971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차입매수를 통해 다시 비공개 회사가 됐다. 사들일 회사를 담보로 돈을 빌려 그 회사를 사는 방식이다. 1873년이라는 연도, 광부의 옷이라는 출신, 미세탁이라는 불편함까지 전부 팔 물건으로 재편되던 10년의 한가운데였다.
같은 원단을 쓰면서 세 회사는 다른 것을 팔았다
리바이스가 역사를 팔 때 랭글러는 직업을 팔았고 리는 핏을 팔았다. 원단은 셋 다 데님이었다.
랭글러는 1947년부터 프로 로데오 선수에게 13MWZ를 입혀 시험했고 1974년 프로 로데오 카우보이 협회의 공식 인증을 받았는데, 회사 표현으로는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한” 웨스턴웨어 브랜드다. 리바이스가 1873년이라는 연도를 팔 때 랭글러는 그 옷을 입고 경기장에 나가는 사람을 팔았다.
리는 그 사이에서 핏을 골랐다. 1982년 항목은 “The Brand That Fits” 슬로건과 스트레치 원단 런던 라이더스다. 원본 글들이 적은 “리 진스가 1982년 스톤워시드 제품을 내놨다”와 “1969년 무렵 스타일 중심 브랜드로 완전히 전환”은 둘 다 리 공식 연혁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이 재편은 세 브랜드만의 일이 아니었다. 1986년 랭글러의 모회사 블루벨이 VF 코퍼레이션과 합병해 세계 2대 청바지 제조사가 됐고, 같은 해 리바이스는 데님이 아닌 도커스 카키를 내놨다. 여기에 디자이너 진이 겹친다. 무르자니 그룹 공식 자료는 1976년 자사가 글로리아 밴더빌트와 손잡고 “세계 최초의 디자이너 진”을 냈다고 밝힌다. 뒷주머니에 이름을 수놓고 동전주머니에 백조를 달았다. 원본 글에 나오는 “1979년 한 해 600만 벌”이라는 수치는 확인되지 않아 뺐다.
패치를 다 떼어내면 무엇이 남나
80년대가 옷에 남긴 것 중 가장 오래간 물건은 회사가 만든 게 아니라 입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배틀 재킷이 그렇다. 그런데 바탕이 되는 옷과 그 위에 덧붙은 것의 자료 사정이 정반대다.
바탕은 문서가 있다. 리바이스 트러커 재킷의 3세대인 Type III는 1967년 품번 70505로 나왔다. 디자이너 잭 루시에가 이전 세대의 플리트, 그러니까 앞판에 세로로 잡아 넣은 주름을 구리 리벳과 함께 없애고 V자 이음선 두 줄을 그려 넣어, 상체에 삼각형이 강조되는 실루엣을 만들었다. 그 전 세대는 1962년의 557이다.
재미있는 건 이름이다. 리바이스 자료는 “트러커”라는 호칭이 80년대에 일본 빈티지 수집가들이 붙인 것이라고 적는다. 옷은 1967년 것인데 우리가 그 옷을 부르는 이름은 80년대 산물인 셈이다.
그 위에 붙는 것들은 사정이 다르다. 밴드 패치와 배지와 스터드로 뒤덮고 대개 소매를 잘라낸 재킷을 배틀 재킷이라 부르는데, 이 명칭이 언제 어디서 처음 쓰였는지를 못 박아주는 1차 자료는 없다. 미국 바이커 클럽이 소속과 계급을 패치로 표시하던 관행을 70년대 펑크가 가져왔고 80년대 메탈이 이어받았다는 계보는 널리 통용되지만, 그 이전 관계를 문서로 보여준 사람은 아직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은 정황으로 둔다. 다만 정황이라고 해서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패치가 빼곡한 재킷이라도 소매 안쪽을 걷어보면 원단과 이음선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서 이야기가 갑자기 서울로 넘어오는데, 나는 이 대목이 제일 재미있다. 청바지가 왜 그렇게 팔렸는지를 설명하는 건 미국 공장 얘기가 아니라 이 날짜다.
1983년 3월 2일, 서울에서 교복이 사라졌다
미국에서 청바지가 노동의 기호에서 소비의 기호로 옮겨가던 그 몇 해에,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이유로 옷 시장이 한 번 열렸다가 닫혔다.
국가기록원 정리에 따르면 문교부는 1981년 「중·고등학생 교복 및 두발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취지는 “학생교복제도를 개선함으로써, 학생들의 개성을 신장하고 미적 품성을 함양하여 활동을 편리”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발표는 1982년 1월 4일에 공식화됐고, 당시 문교부 장학실장 황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결정은 학생들의 개성을 신장시키고 심미안을 길러 학생들을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조치이다. 우리 학교 교육의 최대의 문제점인 교육의 획일주의를 깨는 중대한 전기이기도 하다.”
두발 자유화는 1982년에 먼저 시행됐고, 교복 자율화는 1년 준비 기간을 거쳐 1983년 3월 2일부터 실시됐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발표문에 함께 붙은 규제 목록이다. 신발에 대해 “하이힐·부츠 및 사치성 구두(에나멜화·라카화 등)는 엄격히 규제”한다고 못 박았다. 옷은 풀되 사치는 막겠다는 것이다.
그 계산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5년 10월 정부는 가계 부담 증가, 학교 밖 생활지도의 어려움, 소비 경쟁 심화를 이유로 보완조치를 발표했고, 1986년 9월 1일부터 다시 교복 착용을 허용했다. 3년 반 만이었다.
교복이 벗겨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갔나
그 자리에 청바지가 들어갔다는 말은 널리 통용되지만, 통설을 문서화한 것과 인과를 문서로 증명한 것은 다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바지」 항목은 “1983년에 시행된 교복 자율화를 계기로 청바지는 청소년들의 실용적인 옷으로 자리매김하였다”고 적는다. 국책 학술 백과가 그 연결을 명시하는데, 항목은 근거 자료를 달지 않았다. 그러니 이것은 문서화된 통설이지 문서화된 인과가 아니다.
같은 항목이 함께 남긴 이름들은 그보다 단단하다. 80년대 국내 브랜드로 뱅뱅·장원·화이트호스·아라아라·빅보이를, 해외 라이선스 브랜드로 조다쉬·리바이스·써지오 바렌테를 든다.
라이선스 쪽은 계약 연도가 보도로 남아 있다. 죠다쉬는 반도패션이 1982년 10월부터 5년 기술제휴로 들여왔고 가격은 7만~9만원, 써지오 바렌테는 삼도물산이 미국 잉글리쉬 타운사와 기술제휴로 냈고 4만~6만원이었다. 교복이 벗겨진 해에 국내 매대에는 이미 7만원짜리 청바지가 놓여 있었다는 뜻이다.
국내 브랜드 쪽에서 계보가 가장 길게 잡히는 것이 뱅뱅이다. 백과사전은 국산 청바지의 시작을 1970년 평화시장 ‘제일사’가 수출하고 남은 원단으로 만든 바지로 잡는데, 업계지 인터뷰에서 권종열 뱅뱅어패럴 회장은 1961년 평화시장에서 제일피복으로 시작해 1970년 뱅뱅을 내놨다고 말한다. 표기가 다르지만 같은 회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같은 인터뷰는 1983년 9억원을 들여 가수 전영록을 세운 TV 광고를 만들었다고 밝힌다. 다만 사옥은 엇갈린다 — 원본 글이 따른 3차 자료는 1983년 서초동이라 적고, 이 인터뷰는 1982년 양재동이라 적는다. 회사가 공식 연혁 페이지를 두지 않아 어느 쪽도 1차 자료로 굳지 않는다.
80년대에 통하던 공식은 왜 90년대에 함정이 됐나
이 10년의 결말은 90년대 숫자에 있다. 리바이스 매출은 1996년 71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3년 뒤인 1999 회계연도에는 51억 달러였고, 그해 2억 700만 달러 손실을 냈다. 포브스는 2000년 기사에서 이를 3년 연속 매출 감소로 정리했다.
무너진 시점은 문서에 남았지만 무너진 이유는 이 글이 문서로 확인하지 못했다. 남는 것은 순서다. 1996년 정점, 1999년 51억 달러와 2억 700만 달러 손실, 그리고 그 사이 백화점을 채운 프리미엄 데님. 그때 리바이스가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여전히 1873년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셋을 인과로 잇는 자료는 없고, 잇지 않은 채로 두는 편이 정확하다.
그래도 순서만으로 남는 문장이 하나 있다. 작업복이 옷이 아니라 이야기가 된 순간부터, 그 이야기가 낡는 속도가 회사의 수명을 정하게 됐다.
붉은 실선이 원단 폭 때문에 사라졌다는 대목에서 좀 허탈했다. 수집가들이 값을 매기는 기준 중에 이런 게 꽤 있다. 만든 쪽은 아무 의미도 두지 않았는데 나중에 의미가 붙은 것들.
그래서 매대에서는 무엇부터 보면 되나
이 원고가 문서로 확인한 연도들은 그대로 판별 기준이 된다. 표로 먼저 놓고, 아래에 하나씩 풀어둔다.
| 무엇을 보나 | 그렇다면 | 아니라면 |
|---|---|---|
| 옆선 안쪽의 붉은 실 한 줄 | 1983년 이전에 짜인 원단이다 |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 단서는 한쪽으로만 작동한다 |
| 얼룩덜룩한 표백 무늬 | 1986년에 출원된 애시드워시 공정이다. 80년대 후반보다 앞설 수 없다 | 연대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없다 |
| 재킷 앞판의 V자 이음선 두 줄 | 1967년 Type III 이후다 | 그 이전 세대일 수 있다 (1962년 557 등) |
패치·핀·색 바랜 정도는 연대 근거가 아니다.
옆선 안쪽에 붉은 실 한 줄이 보이면 1983년 이전에 짜인 원단이다. 다만 없다고 해서 80년대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이 단서는 한쪽으로만 작동한다.
얼룩덜룩하게 표백된 애시드워시는 1986년에 출원된 특허의 공정이다. 이 무늬가 있으면 그 옷은 80년대 후반보다 앞설 수 없다.
V자 이음선 두 줄이 그려진 트러커는 1967년 Type III 이후다. 그 옷을 ‘트러커’라고 부르는 이름 자체는 80년대 일본에서 붙었다.
패치와 핀은 연대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언제든 옮겨 달 수 있기 때문이다. 연대를 증언하는 것은 그 아래 데님과 재봉선이다.
판매자가 ’80년대 빈티지’라고 적어놨다면, 색 바랜 정도부터 보지 마라. 바랜 정도가 말해주는 것은 연도가 아니라 그 옷이 세탁조에서 몇 분을 돌았는지다.
애시드워시를 끝낸 것은 유행이 아니었다. 뉴멕시코 보고서는 1991년 말부터 이 공정이 줄어든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표백 약품의 환경 영향, 그리고 미국의 한 대형 의류업체와 엘패소의 한 가공업체 사이에 걸린 특허 침해 소송. 낡음을 만드는 법이 특허가 된 순간부터, 그걸 누가 소유하느냐를 두고 싸우는 일도 함께 시작된 셈이다.
참고 자료
1차 자료 (제조사·기관 공식 문서, 특허, 정부·공공기관 보고서)
- Levi Strauss & Co., 501® Fab Facts: The Story of Selvedge (2023.2.21) — 1927년 콘 밀스 10oz 레드 셀비지 개발, 1927~1983년 사용, 1984년경 와이드 룸 전환
- Levi Strauss & Co., History of The Levi’s 501 Jeans (PDF) — 1961년경 방축 처리, 1971년 빅 E→소문자 e, 1981년 여성용 501, 1983년 콘 밀스 60인치 와이드 룸 XXX 데님, 1984년 「501 Blues」
- Levi Strauss & Co., Levi Strauss & Co. Timeline (PDF) — 1971년 상장, 1984년 LA 올림픽 공식 의류, 1985년 차입매수, 1986년 도커스
- Levi Strauss & Co., Behind the Original: Bruce Springsteen’s Iconic Levi’s® — 아카이브 실물 조사. 빅 E 탭, 셀비지, 뒷주머니 리벳 없음, 내부 세탁 라벨 없음, 엘패소 공장 1966~1971년 생산 추정
- Levi Strauss & Co., Celebrating 40 Years of the Women’s 501® Jean (2021.5.13) — 1981년 출시, 광고 「Travis」
- Levi Strauss & Co., Top Tops: Levi’s® – Official Outfitter of the 1984 U.S. Olympic Team (2017.8.17) — 설계자 엘런 뒤노, 재킷 사양
- Levi Strauss & Co., The Type III Trucker Jacket Celebrates 50 Years (2017.10.2) — 1967년 품번 70505, 디자이너 잭 루시에, 1962년 557, “트러커” 명칭의 80년대 일본 유래
- Wrangler, Our History — 1947년 로데오 벤 설계, 1974년 PRCA 공식 인증, 1986년 블루벨-VF 합병
- Lee, The History of Lee Jeans — 1982년 “The Brand That Fits”·런던 라이더스. 1969년 전환, 1982년 스톤워시드 항목 없음
- Murjani Group, Gloria Vanderbilt — 1976년 출시, “세계 최초의 디자이너 진”
- US Patent 4,218,220 — Method of fading blue jeans, BASF Wyandotte Corp, 1978.12.4 출원 / 1980.8.19 등록
- US Patent 4,740,213 — Method of producing a random faded effect on cloth or made-up garments, Francesco Ricci / Golden Trade SRL, 1986.10.22 출원 / 1988.4.26 등록
- US Patent 5,006,124 — Wet processing of denim, FMC Corp, 1989.12.15 출원 / 1991.4.9 등록
- Jerry M. Hoffer, Pumice and Pumicite in New Mexico, New Mexico Bureau of Mines & Mineral Resources Bulletin 140 (1994) — 1985년경 스톤워싱 연마재 용도 개시, 1986~87년 연마재 부석 사용량 71% 증가, 1988년 엘패소 세탁 공장 월 2,500mt 초과 소비(부록은 월 300만 파운드로 추산 — 보고서 내 수치 불일치), 로스앤젤레스·엘패소가 최대 시장, 1988년 3교대 가동, 1991년 말 애시드워시 감소와 그 두 원인
- 국가기록원, 「금기와 자율 — 교복과 과외」 — 1981년 문교부 「중·고등학생 교복 및 두발제도 개선(안)」, 1983년 시행, 1985년 10월 보완조치, 1986년 9월 1일 교복 착용 허용. 소장 기록물 대한뉴스 「중고등학교 교복 머리형 자율화」(1982), 관리번호 CEN0010274
- 앨버타 왕립박물관, Piece by Piece: The GWG Story 연표 1970년대 — 1972년 선세탁 청바지 “Scrubbies” 발명, 연간 200만 벌, 1977년 도널드 프리랜드 마케팅 이사. 연표는 1950년대 항목이 없고 프리랜드와 Scrubbies를 잇지 않는다
2차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바지」 — 1970년 평화시장 ‘제일사’가 국산 청바지의 시작, 1983년 교복 자율화를 계기로 청소년의 옷으로 자리매김(근거 자료 미제시), 80년대 국내·라이선스 브랜드 목록, 1989년 수입 자율화
- 이코노미스트, 「”죠다쉬·써지오바렌테 어디갔어?”…’Y2K 패션’ 데님 열풍의 주역들」(2023.3.3) — 죠다쉬 반도패션 1982년 10월~1987년 기술제휴, 7만~9만원 / 써지오 바렌테 삼도물산-잉글리쉬 타운사 기술제휴, 4만~6만원
- 패션비즈, 「권종열 뱅뱅어패럴 회장」 — 1961년 평화시장 제일피복, 1970년 뱅뱅 런칭, 1972년 인디고 청바지 15만장, 1982년 양재동 사옥, 1983년 9억원 TV CF, 전영록 모델
- 한국일보, 「82년 1월 4일 교복·두발 자유화 발표…”교육의 획일주의 깨는 전기”」(2022.1.4) — 황철수 장학실장 발언 및 복장 규제 조항 재수록
- 경향신문, 「[어제의 오늘] 1983년 교복자율화」(2009.3.1) — 1983년 3월 2일 시행일
- Forbes, Levi Strauss’ Frayed Fortunes (2000.6.28) — 1996년 71억 달러 정점, 1999 회계연도 51억 달러, 1999년 2억 700만 달러 손실
- International Directory of Company Histories, Guess, Inc. — 1981년 마르시아노 형제 창업, 1981년 12월 블루밍데일스 위탁 30벌, 60달러, 3시간 완판
- IATP 재수록 보도, Apparel industry no longer a good fit in El Paso (2005) — 1970년대 엘패소 청바지 공장 종사자 약 4만 명, 1993년 2만 4천 명 미만, 2005년 2천 5백 명 미만
- Wikipedia, Stone washing / Great Western Garment Co. — 스톤워시 기원 주장 병존(프리랜드·블랑키에·에드윈·지르보) 확인용. 각 주장의 원 출처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병존 사실만 인용
확인하지 못해 본문에서 뺀 것
- 특허청 키프리스(KIPRIS) 국내 상표 출원·등록 이력 — 검색 도메인 접근이 차단돼 뱅뱅·죠다쉬·써지오 바렌테의 국내 상표 출원 연도를 문서로 확정하지 못했다. 편집장이 지목한 국내 1차 자료 구멍은 라이선스 계약 연도(보도)와 백과사전 항목으로 대체했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1980년대 국내 지면 원문) — 접근 차단.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는 수록 범위가 1883~1966년이라 80년대 미수록
- 1981년 리바이스 501 미국 소매가 — 게스의 60달러가 당시 기준으로 비싼 값이었는지 재려면 이 숫자가 필요한데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은 비싸다고 쓰지 않았다
- 뱅뱅어패럴 공식 연혁 — 자사 웹사이트에 연혁 페이지 없음. 사옥 연도·소재지가 자료마다 엇갈리는 상태로 남겨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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