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이유

우리가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이유

셔터를 누르고 나면, 결과를 알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화면에 결과가 곧바로 뜬다.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찍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요즘 20대와 30대 사이에서, 필름을 넣고 셔터를 누른 뒤 현상소에 맡길 때까지 결과를 전혀 알 수 없는 카메라가 다시 팔리고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불편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숫자로 보면 우연이 아니다

이건 몇몇 애호가들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실제 수치로 확인되는 흐름이다. 2023년 한 해 전 세계에서 팔린 필름롤은 2천만 개가 넘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15% 늘어난 수치다. 글로벌 필름사진 카메라 시장 규모 역시 완만하지만 꾸준히 커지는 추세로 전망되고 있고, 한때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던 디지털카메라 판매액마저 2021년부터 다시 반등세로 돌아섰다. 즉석카메라나 캠코더, 턴테이블 같은 다른 아날로그 기기들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한 가지 물건만 반짝 유행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기다려야 하는 물건들 전반이 동시에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LP를 사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이 반등을 이끄는 건 LP나 카세트테이프가 뭔지 몸으로 기억하는 세대가 아니다. 한 대형 음반 유통사의 집계에 따르면, LP 구매자 중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27%에서 2021년 40.8%로 뛰었다. LP판이 나온 지 한참 지나서 태어난 세대가, 부모 세대의 물건이었던 걸 굳이 찾아서 사고 있다는 뜻이다. 스트리밍으로 아무 노래나 즉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판을 사서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내려야만 소리가 나오는 방식을 선택하는 셈이다.

경험해본 적 없어야 신선하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가 따로 있다. 옛것을 그대로 다시 꺼내 오는 복고(레트로)와 달리, 뉴트로는 그 시절을 살아본 적 없는 세대가 처음 접하는 물건에서 신선함을 느끼는 현상을 가리킨다. 7080세대에게 필름카메라는 그저 어릴 적 집에 있던 물건이지만, 지금의 20대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만져보는 낯선 도구다. 익숙하지 않아서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불편함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은 실패를 없애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손떨림 보정, 자동 초점, 즉석 확인까지,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사람이 판단할 부분을 하나씩 지워온 셈이다. 그런데 필름카메라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다. 노출을 잘못 맞추면 그대로 날아가고, 현상하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 길이 없다. 이 불확실성 자체가 요즘은 오히려 콘텐츠가 된다. 잘못 나온 사진, 빛이 샌 사진마저 SNS에서는 하나의 스타일로 소비된다. 완벽하게 찍으려는 사람보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채로 기다리는 재미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실패마저 결과물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실수를 지우고 다시 찍는 게 당연했던 이전 세대에게는 오히려 낯선 감각이다.

아날로그 리와인드를 시작하며

이 사이트는 지금까지 80년대 의류를 다뤄왔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카메라, 시계, 캠코더처럼 그 시절 손에 쥐고 쓰던 물건들로 눈을 돌린다. 이름은 ‘아날로그 리와인드’로 정했다. 되감기라는 뜻 그대로, 한 번 지나간 물건과 방식을 다시 되감아 살펴보는 시리즈다.

다음 편에서는 즉석카메라 시장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인스탁스와 폴라로이드, 두 브랜드가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를 다룬다. 그다음에는 필름카메라 100년의 역사를 연대기로 정리하고,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국민 카메라’로 불리는 리코 GR 시리즈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카메라뿐 아니라 아날로그 시계, 캠코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까지, 앞으로 열네 편에 걸쳐 그 시절의 물건들이 왜 다시 손에 쥐어지고 있는지를 하나씩 따라가 볼 예정이다. 브랜드의 흥망을 다루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하나 사보려는 사람을 위한 실전 가이드도 있고, 애호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순간을 모은 글도 준비돼 있다.

완벽한 사진 한 장보다, 무엇이 나올지 몰라 기다리는 그 며칠이 더 그리웠던 건지도 모른다.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